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수백만 도(℃)로 달아오른 수소 리본을 43초 동안 자석으로 가둔 독일의 스텔러레이터 윈델슈타인 7-X가 “핵융합은 늘 30년 뒤”라는 냉소에 균열을 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인근 공동 토카막 JET 연구진도 60초 플라스마 제어 기록을 곧 공개할 예정이라며 맞불을 놨다. 두 장치는 방식은 다르지만 ‘자기밀폐 핵융합’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달린다.
윈델슈타인 7-X는 내부 플라스마에 전류를 흘리지 않고 외부 초전도 자석만으로 도넛 모양 자기병을 만든다. 지난해 5월 43초 연속 운전을 달성한 뒤 “1분, 나아가 30분 이상 연속 가동을 노린다”고 밝혔다. 반면 JET은 플라스마 자체에 강한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보강하는 토카막 방식이다. JET 팀은 은퇴 직전이던 지난해 12월 최대 60초 운전을 달성했으며 조만간 학술지에 세부 데이터를 게재한다. 독일 측은 “JET의 플라스마 부피가 세 배 크기라 유리했다”고 강조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케임브리지대 토니 롤스톤 교수는 “신형 초전도 자석 덕에 상용로 시기는 15~20년까지 당겨졌다”고 평가했다. 영하 269℃ 액체헬륨으로 냉각한 자석은 저항 없이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어 플라스마를 더 안정적으로 가둔다. 프랑스에서 건설 중인 국제실험로 ITER 역시 토카막이지만, 민간 부문에서도 각종 변형 기술이 쏟아진다. MIT에서 스핀오프한 CFS는 버지니아주에 소형 토카막 ‘ARC’를 지어 2030년대 초 400 MW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캐나다 제너럴퓨전은 ‘자기표적융합(MTF)’이라는 디젤엔진형 하이브리드 방식을 내세우며 같은 시기 첫 전력 공급을 노린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연구소 NIF는 2022년 거대 레이저 192발로 완두콩 크기 연료펠렛을 압축‧점화해 입력보다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 ‘순에너지 양(+)’ 기록을 썼다. 다만 레이저 충전에 12시간 이상, 전력 소모는 방출 에너지의 100배에 이른다. 상업로가 되려면 1초에 10개 펠렛을 연속 점화해야 한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유일한 자발적 핵융합 불꽃”이라며 의의를 강조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전력 생산용으로는 자기밀폐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플라스마가 벽에 닿으면 즉시 냉각돼 반응이 꺼지므로 수십 분, 수 시간 단위의 안정 운전이 상용화의 관문이다. 동시에 설비를 소형화하고 자석‧구조재를 값싸게 생산해 kWh당 전력단가를 기존 발전원과 경쟁 가능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조지 타이넌 UC샌디에이고 교수는 “자석·레이저 양 진영 모두 물리적으로 타당성이 입증됐지만 공학적 난제는 남았다”며 “민간 자본 유입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혁신 속도를 끌어올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공상’으로 치부된 핵융합이 초전도·레이저 기술 혁신으로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태양을 땅 위에 묶어둘 인류의 도전이 2030년대에 첫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연구소·기업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