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하나, 둘, 셋….” 유년 시절 숨바꼭질에서 체감하던 1초는 80년을 산다 해도 25억까지 밖에 세지 못한다. 그러나 물리‧화학자들에게 1초는 너무도 ‘느린’ 단위다. 이들이 주목하는 시간 범위는 0.000000000000000001초, 즉 1아토초(10^-18초)다. 빛이 원자 하나를 겨우 지나가는 순간, 전자는 화학 결합을 만들거나 끊고, 분자는 전혀 다른 구조로 재배열된다. 최근 노벨물리학상을 이끈 고차조화파 발생(HHG) 기술과 초전도 레이저가 이 ‘무한소의 순간’을 포착하며, 학계는 아토초 화학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아토초 과학은 1980‧90년대 펨토초(10^-15초) 레이저가 등장하며 토양을 닦았다. 이후 연구진은 펨토초 적외선 펄스를 HHG 결정에 통과시켜 수백 아토초에 불과한 극초자외선(XUV) 펄스를 생성, 전자 움직임을 일종의 ‘슬로모션’ 영상처럼 끊어 관측하는 펌프-프루브(pump-probe) 기법을 완성했다. 현재는 UC버클리 스티븐 레오네 교수팀 등 세계 각지 연구소가 크세논‧메테인 등 기체 샘플에 레이저를 쏘아, 결합이 풀리고 광이온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아토초 해상도로 기록하고 있다.
아토초 분광법은 전자가 두 에너지 준위 사이를 오가는 과정, 원뿔형 잠재곡면 교차(conical intersection) 등 이론으로만 추정되던 전자 동역학을 실험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로써 태양광을 흡수한 엽록소 내 에너지 흐름, 망막 분자의 형태 전환 등 생명‧재료 현상 이해도가 높아졌다. 연구진은 “특정 결합만 골라 끊거나, 원하는 반응 경로를 유도하는 ‘레이저 촉매’ 설계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아토초 실험실은 나노 미세조정 스테이지, 진공 챔버, 진동 차단 테이블 등으로 빛 한 줄기의 흔들림마저 통제한다. 아직 장비 규모·비용 장벽이 높지만, 의료 영상·나노전자 소자 분석 등 산업 응용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EU, 미국, 중국은 국가 프로젝트로 대형 아토초 빛원(라이트소스) 구축에 나섰다.
고속 레이저의 다음 목표는 수십 아토초 이하, 심지어 지토초(10^-21초) 영역이다. 이 범위는 전자 자체의 파동함수가 변형되는 속도와 맞물려, 양자역학의 근본을 실험으로 검증할 열쇠가 될 전망이다. ‘아토초 혁명’이 분자·전자 공정을 설계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화학·재료·생명과학을 관통하는 시간 척도 역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