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고리, 정말 마실 수 있을까… 얼음·금속·유기물 속 ‘착한 물’ 고르기 전략
토성 고리, 정말 마실 수 있을까… 얼음·금속·유기물 속 ‘착한 물’ 고르기 전략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토성의 장대한 고리는 얼음 알갱이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과연 그 물을 마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최근 미국 공영라디오 NPR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과학 저술가 필 플레이트 박사가 이 화제를 제기하며 학계 관심이 다시 쏠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실 수 있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는 것이다.

토성 고리는 문자 순서로 A, B, C, D 등 네 구역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A·B 고리는 물 얼음 함량이 99%에 달할 만큼 순도가 높다. 알갱이 크기도 수 센티미터 안팎으로 ‘우주 얼음 조각’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반면 C·D 고리는 미세 운석 충돌로 들어온 규소, 철, 복합 유기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색이 어둡고 불순물이 많다.

고리 얼음을 녹이면 철 성분이 미량 섞여 나올 수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식수 기준을 리터당 0.3밀리그램 이하로 권고한다. 자석으로 금속 입자를 제거하고, 실리카(규소) 같은 광물 침전을 거름망으로 걸러야 물맛을 해치지 않는다. 문제는 정확한 조성이 밝혀지지 않은 탄소계 오염물이다. 과학자들은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 등 일부 화합물이 잠재적으로 유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A·B 고리 얼음을 선별하는 ‘소스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음에는 소량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섞여 있다. 얼음을 녹이면 메탄은 기체로 빠져나가고, 이산화탄소는 탄산수처럼 청량감을 더할 수 있다. 물론 냄새가 나는 암모니아를 포함한 외곽 E 고리(엔셀라두스 기원 물질)는 피하는 편이 낫다.

현재 지구 인구가 하루 2리터씩 마신다고 가정해도 백만 년 넘게 사용 가능한 분량이다. 우주 항로가 본격 개척되면 토성 고리는 ‘최대 급수 정거장’으로 가치가 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토성 고리 얼음은 기본적으로 깨끗하지만, 미지의 유기 오염물과 미세 금속을 고려하면 정제 과정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마실 수 있다’는 답 뒤에 따라붙는 단서, 그리고 고리를 바라보며 한 잔 들이켜는 상상은 인류의 우주 식수 확보 연구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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