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다중우주 논쟁… ‘다크 타임라인’은 현실일까
양자 다중우주 논쟁… ‘다크 타임라인’은 현실일까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확정된 직후, 구글 검색어 순위에 ‘다크 타임라인(darkest timeline)’이 잠시 오르내렸다.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용자들이 “우리가 최악의 시간선에 갇힌 것 아니냐”고 농담 섞인 푸념을 쏟아낸 것이다. 그런데 물리학계에서는 이 같은 ‘평행 세계’ 담론이 결코 농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보여 주는 다중우주(multiverse) 개념 때문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의 입자 하나가 부분적으로 도금된 거울을 만날 때, 통과와 반사라는 배타적 결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관측 전까지는 두 가능성이 겹친 ‘중첩’ 상태로 남아 있다가, 측정 순간 한쪽으로 수렴한다. 이때 나머지 가능성은 사라진 걸까, 아니면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세계에 남아 있을까? 1950년대 미국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후자라고 주장했다. 관측자는 입자와 얽혀 같은 중첩 상태가 되고, 그 결과 우주가 서로 다른 ‘분기’로 나뉜다는 것이다.

분기된 세계가 실제임을 뒷받침하는 실험으로 ‘엘리추르–바이드만 폭탄 실험’이 자주 언급된다. 빛이 갈라지는 두 경로 중 하나에 광감응 폭탄을 놓으면, 빛이 폭탄을 건드리지 않아도 가능성만으로 중첩이 깨지며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 학계에서는 이를 ‘반사실성(counterfactual) 효과’라 부른다. 계산을 실행하지 않고도 값을 얻는 ‘반사실성 양자컴퓨팅’ 연구도 이 원리를 이용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도 입자는 ‘작용 최소 원리’를 따라 모든 경로를 가상으로 탐색한 뒤 최적 경로를 택한다. 통계물리학은 수십 퀸틸리언 개의 입자 배열 가능성을 한데 묶어 해석하고, 진화생물학 역시 “역사를 다시 돌리면 같은 종이 탄생할까”라는 반사실성 질문을 던진다. 결국 “가능하지만 실제가 되지 못한 것”이 현실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공통 화두다.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는 “모든 가능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관점을 받아들이지만, 인간이 오로지 하나의 시간선만 경험한다는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학계에서는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 지적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동시에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생명체는 외부와 활발히 물질·에너지를 교환하며 중첩 흔적을 빠르게 지워 버린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평행 세계가 있더라도 우리 의식이 이동할 창구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시간선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현재의 세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뜻이다. 양자 다중우주 이론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명확하다. 무수한 갈림길 속에서도 우리가 서 있는 길은 단 하나, 변화를 이끌 주체 역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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