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금(Au)은 일반적으로 1,300K(약 1,027℃)에서 용융점을 맞는다. 그러나 미국 SLAC 국립가속기연구소와 네바다대 공동 연구팀이 나노미터 두께 금박에 초강력 레이저를 45펨토초(1펨토초=1,000조분의 1초) 동안 쏘아 올린 결과, 금 표면 온도가 무려 19,000K(약 1만 8,700℃)까지 치솟았음에도 고체 구조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열역학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초과열(superheating)’ 현상이 실험으로 입증된 셈이다. 연구 내용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게재됐다.
그동안 물리학계는 고체 금의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액체보다 높아지는 지점을 6,000K 안팎으로 추정했다. 이 경계(일명 ‘엔트로피 캐터스트로피’)를 넘으면 고체가 스스로 붕괴해 액체로 전이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연구진이 레이저 가열 직후 X선 자유전자 레이저(Linac Coherent Light Source)로 원자 운동 속도를 측정한 결과, 금은 19,000K에서도 결정 구조를 유지했다. 논문 공동저자 토머스 화이트 교수는 “열팽창이 일어나기 전에 극초단 시간 내 열을 주입해 물질이 팽창·용융할 틈을 차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험은 금박 표면 전자를레이저로 이온화하며 내부 압력을 동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연구진은 “압력 효과만으로는 관측된 초과열 규모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고압·고온·초단시간이 결합된 전례 없는 물질 상태”라고 강조했다. 중국 서남교통대 뤄성녠 교수는 “흥미로운 결과지만 일반 압력 조건의 고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X선 산란 기반 초고온 측정 기법을 다른 ‘웜 덴스 매터(warm dense matter)’ 연구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이미 레이저 충격파로 지구 핵 조건을 모사한 철(Fe) 박막 실험에서 융점 측정에 성공했다. 이는 핵융합 실험체 설계나 행성·항성 내부 모델링 정확도를 높이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초과열 고체 연구는 고출력 레이저 시설이 증가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논문 저자 밥 네이글러 박사는 “고체가 감내할 수 있는 온도 한계가 재정의되고 있다”며 “핵융합 연료 캡슐부터 우주선 차폐재까지 고극한 환경 소재 설계에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