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10년 전 두 개의 검은구멍 충돌로 생성된 중력파를 처음 포착한 미국 라이고(LIGO) 관측소가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가동 축소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립과학재단(NSF) 예산을 절반 넘게 줄이겠다고 예고하면서, 두 기로 이뤄진 관측소 중 하나를 문 닫을 처지다. 과학계는 “현대 천문학의 청각을 잃는 것과 같다”고 반발한다.
라이고는 미국 루이지애나·워싱턴주에 각각 4㎞ 길이 ‘L’자 레이저 간섭계를 설치해 2015년 9월 첫 신호를 포착했다. 이후 이탈리아 비르고, 일본 가가라와 함께 지금까지 300건 넘는 중력파 사건을 기록했다. 그러나 운영비 1,900만 달러(약 260억 원) 삭감이 현실화될 경우 한 기만 남아 탐측 거리가 35%로 줄고, 실제 검출 건수는 10~20% 수준으로 급감한다. 두 기 관측값을 대조해 잡음을 걸러내는 ‘쌍안’ 체계를 잃게 되면 희귀·대형 충돌은 놓칠 수밖에 없다. 복수의 검출기가 있어야 하늘에서 사건 위치를 삼각측량 할 수 있다. 2017년 중성자별 합병 때 정확한 좌표를 확보해 전 세계 망원경이 황금 생산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도 이 덕분이었다. 한 기만 가동되면 전자기파 후속 관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라이고는 양자 얽힘을 활용해 잡음을 줄이는 ‘양자 여과기’를 처음 실증하면서 양자센서·마이크로칩 산업에도 파급 효과를 내고 있다. 2024년까지 14억 달러 넘게 투입된 대형 과학 인프라를 절반 폐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 손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삭감안에는 유럽 우주 기반 중력파 탐사선 리사(LISA) 참여 중단과 차세대 관측소 ‘코스믹 익스플로러’ 예산 폐지도 포함됐다. 반면 유럽은 아인슈타인 망원경, 중국은 톈친 프로젝트로 대형 투자를 이어 가고 있어 ‘두뇌 유출’ 우려가 커진다.
미 상원 세출위원회가 “라이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지만, 의회가 행정부 요구를 막아낼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19세기 전파 발견이 오늘날 인터넷으로 연결됐듯, 기초과학 투자는 예측 못한 혁신의 씨앗”이라며 “현미경을 발명해 놓고 렌즈도 들여다보기 전에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