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전통적으로 수천 톤 규모였던 중성미자 검출기가 주먹만 한 장비로 대폭 줄었다. 독일·스위스 연구진이 순수 게르마늄 4 kg으로 이뤄진 ‘코누스 플러스(CONUS+)’ 장비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된 중성미자 약 400개를 119일 만에 잡아낸 것이다.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어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거대 수조형 검출기에서 극소수 충돌 신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대신 ‘코히런트 산란’ 현상에 주목했다. 에너지가 낮은 중성미자는 파장이 길어 원자핵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고 튕겨 나가는데, 이 과정이 전자·양성자 개별 충돌보다 100배 이상 자주 일어난다. 다만 핵이 받는 반동 에너지는 ‘핑퐁공이 유조선을 건드린 수준’이라 극미량이다. 게르마늄 결정과 초저온 계측 기술이 이를 처음으로 정밀 계수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2018년 독일 브룬스뷔텔 원전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시작해, 2022년 원전 폐쇄 후 스위스 라이프슈타트 원전으로 장비를 옮겨 업그레이드했다. 측정된 395건의 충돌 이벤트는 표준모형이 예측한 값과 오차 범위 내에서 일치했다. 듀크대 케이트 숄버그 교수는 “소형화로도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코히런트 산란 방식은 세 종류 모든 중성미자를 낮은 에너지 영역까지 감지할 수 있어, 일본 하이퍼카미오칸데처럼 고에너지 중성미자 관측을 목표로 하는 대형 검출기와 상호 보완적이다. 연구팀은 “민감도가 더 향상되면 초신성 붕괴 속 중성미자 폭발이나 태양 내부 변화를 전례 없이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소형·고효율 중성미자 검출기는 원전 실시간 모니터링, 핵확산 감시 등 안보 분야 응용 가능성도 크다. 물리학계는 “톤(t)급 실험실을 장난감 상자 크기로 축소한 혁신”이라며 “향후 다양한 재료와 설계로 ‘포켓 중성미자 망원경’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