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 속도에 숨은 비밀… 블랙홀의 ‘스핀’이 은하 운명까지 좌우한다
회전 속도에 숨은 비밀… 블랙홀의 ‘스핀’이 은하 운명까지 좌우한다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지구가 하루를 만들듯, 우주 만물은 저마다 스핀(자전)을 품고 있다. 태양과 행성은 물론 거대한 은하까지 회전한다. 그런데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도 강력한 회전을 유지하며, 이 속도가 은하 구조 형성에까지 깊숙이 관여한다는 연구가 잇따라 주목받고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을 규정짓는 값은 단 세 가지다. 질량, 전하, 그리고 자전 속도를 뜻하는 각운동량이다. 실제로 전하는 거의 0에 수렴하므로, 질량과 스핀이 블랙홀의 ‘지문’과 같다. 거대별이 연료를 소진하면 중심핵이 10㎞ 남짓 크기로 붕괴하면서 회전 속도는 수백 배 가속된다. 이는 피겨 선수가 팔을 모아 빠르게 도는 원리와 같다. 회전은 외부 힘이 없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주변 가스나 별이 빨려 들어가면서 추가 각운동량이 더해진다. 이론상 블랙홀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사광(事光) 회전’이라 불리는 빛의 속도 근처다. 실제로 인근 은하 NGC 1365 중심 블랙홀은 이 한계에 근접한 회전을 보인 것으로 관측됐다.

고속 회전은 블랙홀 주변 시공간을 끌어당기는 ‘프레임 드래깅’ 현상을 일으킨다. 밀려드는 물질과 얽힌 자기장이 회전하며 감겨 올라가면, 양극 방향으로 물질을 빛속도에 가깝게 뿜어내는 거대 분출(제트)이 탄생한다. 초대질량 블랙홀의 제트는 수십만 광년을 뻗어, 은하 형성 가스를 밀어내고 별 탄생을 제어하는 ‘우주 조율자’ 역할을 한다. 초대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거대해졌는지는 미스터리다. 회전이 임계치에 가깝다면 원시은하 가스가 원반 형태로 유입되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느리게 돌면 작은 블랙홀들이 난립하다가 무작위로 합쳐졌음을 시사한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같은 차세대 관측기로 초기 우주 블랙홀의 스핀을 측정하면, 두 시나리오 중 하나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은하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 역시 빠르게 회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제트 활동이 너무 강했다면 은하수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지도 모른다. 즉, 인류가 속한 별들의 고향 역시 블랙홀 스핀의 산물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질량 중심을 알면 중력을, 회전 속도를 알면 역동적 진화를 이해할 수 있다”며 “우주 최대의 회전축을 밝혀내는 일은 곧 우리 존재의 기원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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