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가리는 위성 전쟁, 천문학과 산업의 충돌
밤하늘을 가리는 위성 전쟁, 천문학과 산업의 충돌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지구 상공에서 인류의 시야를 둘러싼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는 칠레 고산지대 등지에서 거대한 거울과 초고해상도 카메라로 우주를 관측하는 천문학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구 궤도를 수만 개의 위성으로 채우려는 민간 기업과 군 당국이 있다. 문제는 위성이 지상 관측소 시야를 가로지를 때다. 위성이 태양빛을 반사하면 망원경 사진에 밝은 선이 남아, 실제 천체 현상을 가리거나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베라 C. 루빈 관측소’처럼 정밀한 전천 관측을 수행하는 시설에는 치명적인 방해 요소다. 루빈 관측소 수석 과학자 토니 타이슨은 이를 “두 가지 아름다운 기술의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궤도에는 1만 3천 개가 넘는 우주 비행체가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이다. 스타링크는 전 세계 어디서나 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해 수천 기를 발사했고, 아마존의 ‘프로젝트 쿠이퍼’, 프랑스 ‘원웹’, 중국의 ‘궈왕’·‘첸판’·‘훙후-3’ 등도 대규모 위성군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국 국방부 전용 위성망 ‘스타쉴드’까지 더해지며 궤도는 점점 붐비고 있다.

스페이스X는 초기부터 천문학자들과 협력해 광학 간섭을 줄이려 했다. 1세대 위성에는 빛 흡수 재질과 차양을 적용했지만 공기 저항 문제로 2세대부터는 제거하고, 대신 빛을 지구 반대 방향으로 반사하는 필름과 특수 흑색 도료를 도입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조치가 간섭을 줄였지만, 여전히 개선 여지는 남아 있다.

루빈 관측소 연구진은 위성이 550km가 아닌 350km 저궤도에 있을 경우, 관측 시야에 들어오는 빈도는 40% 줄고 밝기는 5% 늘어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낮은 궤도는 대기 저항으로 수명이 짧아져 운용 부담이 크다. 관측소는 현재 위성 고도를 600km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제천문연맹 산하 ‘어두운 하늘 보호센터’는 주요 위성 기업에 광학·전파 간섭 완화를 요청하고 있지만, 전 세계 모든 사업자와 장기적으로 협의하기엔 한계가 있다. 일부 기업은 협력 의사를 보이지만, 수익에 영향을 주는 궤도 변경 등은 꺼린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아마존, 원웹, 스타링크 등과 직접 협약을 맺어 간섭 최소화 지침을 마련했지만, 국제적 규제 표준은 아직 없다.

타이슨 박사는 위성 간섭을 “마주 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비유하며 “루빈 관측소의 목표는 ‘예상치 못한 발견’인데, 위성군의 전면 장해가 이런 기회를 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훌륭한 과학 장비라도 ‘위성 장막’ 아래에서는 우주의 비밀 중 일부를 영영 놓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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