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1960년대 초, 천문학자들은 처녀자리 방향에서 정체불명의 강력한 전파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가시광선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정밀 관측 끝에 희미한 푸른빛을 띤 별 같은 점 하나가 확인됐다. 이 천체는 ‘3C 273’이라 불렸으며, 지구에서 무려 2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별이 아닌, 은하 중심에 위치한 초거대 블랙홀이 만들어낸 ‘퀘이사’였다.
3C 273의 밝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과학자들은 이 천체의 에너지원이 태양 질량의 9억 배에 달하는 초거대 블랙홀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연구가 진전되면서, 대부분의 거대 은하 중심에는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만도 이런 블랙홀이 수조 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견된 초거대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에 이른다. 일부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소규모 은하와 맞먹는 질량을 지닌 경우도 보고됐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블랙홀은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
2015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댓값은 태양 질량의 약 2천7백억 배에 이를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500억 배 수준이 한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흡수하는 속도와, 뜨겁게 달아오른 원반이 스스로 물질을 밀어내는 ‘에딩턴 한계’ 때문이다. 즉, 아무리 많은 먹이를 줘도 일정 속도 이상은 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은하 중심에도 ‘궁수자리 A*’라는 초거대 블랙홀이 있다. 태양 질량의 400만 배 규모지만 지구에서 약 2만6천 광년 떨어져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흥미롭게도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공간에서 물질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질이 흡수되기 전에는 블랙홀 주변을 빠른 속도로 돌며 ‘강착 원반’을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열은 수백만 도까지 치솟는다. 이 뜨거운 빛이야말로 우리가 블랙홀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블랙홀은 단순히 주변 물질을 삼키는 것뿐 아니라, 은하 충돌 과정에서 서로 합쳐지며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블랙홀의 크기를 무한정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발견 가능한 가장 큰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수백억 배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주는 늘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 왔다. 만약 지금까지 발견된 것보다 훨씬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천문학자들에게 또 다른 숙제를 던져줄 것이다. 블랙홀이라는 우주 괴물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의 이해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