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괴물, 블랙홀의 무게를 재는 방법
보이지 않는 괴물, 블랙홀의 무게를 재는 방법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천체 중 하나인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에 달하는 초거대 존재로, 때로는 은하 전체보다도 무겁다. 하지만 빛조차 삼켜 버리는 블랙홀의 무게를 과연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블랙홀은 종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은 태양 질량의 몇 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항성질량 블랙홀’이다. 이는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뒤 중심핵이 붕괴하면서 형성된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동반성의 움직임을 통해 그 존재와 무게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쌍성계에서 블랙홀이 별과 함께 공전한다면, 동반성은 보이지 않는 무거운 천체를 중심으로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때 별이 지구 쪽으로 다가올 때는 빛이 청색으로 치우치고, 멀어질 때는 적색으로 변하는 ‘도플러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관측해 궤도 주기와 속도를 계산하면, 케플러의 운동 법칙을 통해 두 천체의 총 질량을 구할 수 있고, 별의 질량을 빼면 블랙홀의 무게가 드러난다. 역사상 처음으로 확인된 블랙홀 ‘백조자리 X-1’ 역시 이 방법으로 질량이 태양의 21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초대질량 블랙홀은 또 다른 방식으로 측정된다. 은하 중심에 자리한 이 거대한 블랙홀은 수백만에서 수십억 태양질량에 달한다. 이 경우, 중심을 도는 수많은 별들의 속도를 관측해 질량을 추정한다. 허블 우주망원경에 장착된 분광 장비는 인근 은하 M84의 중심에서 엄청난 도플러 이동을 포착했고, 그 결과 약 3억 태양질량의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또한 은하의 질량과 중심 블랙홀의 크기는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수많은 은하를 분석하면 큰 은하일수록 중심 블랙홀이 크다는 경향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중간 질량 블랙홀 후보들도 드러나고 있다.

간접적인 추정 방법도 다양하다.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X선, 블랙홀에 별이 끌려가 찢겨 폭발을 일으키는 ‘조석 교란 사건’, 그리고 블랙홀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중력파까지 모두 블랙홀의 무게를 계산하는 단서가 된다. 특히 중력파는 두 블랙홀의 질량과 합쳐진 최종 블랙홀의 크기까지 담고 있어, 현대 천문학의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지만, 주변의 별, 물질, 그리고 시공간에 남기는 흔적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그 무게와 본질을 추적해 왔다. 인간의 지혜가 밝혀낸 이러한 방법들은, 우주의 가장 신비로운 괴물을 이해하는 열쇠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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