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인류가 25년간 이어온 국제우주정거장(ISS) 생활이 막을 내릴 예정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2031년 ISS를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시켜 태평양 한가운데로 떨어뜨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후화된 장비와 급증하는 유지비용이 그 이유다. ISS는 2000년 11월 2일 첫 우주인들이 탑승한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으로 운영되어 왔다. 냉전의 잔재 속에서 탄생한 이 우주정거장은 다섯 명의 미국 대통령을 거치며 인류의 우주 거주 실험의 중심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는 민간 기업들이 이끌 새로운 우주정거장이 대신하게 된다.
NASA는 앞으로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상업용 우주정거장을 중심으로 우주 연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베스트(Vast)’는 그 선두에 서 있다. 이 회사는 2026년 5월 ‘헤이븐-1(Haven-1)’이라는 소형 우주정거장을 발사할 예정이다. 이후 엑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 블루오리진(Blue Origin), 스타랩(Starlab) 등도 2030년 이전에 자체 정거장을 궤도에 올릴 계획이다. 베스트의 CEO 맥스 하우트는 “우리는 달과 화성을 위한 거주 모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인공 중력을 갖춘 우주정거장 건설까지 내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헤이븐-1은 캠핑카 크기의 독립 모듈 형태로 설계됐다. 최대 4명이 탑승할 수 있으며, 스페이스X의 ‘드래건’ 캡슐을 통해 방문객을 실어나를 예정이다. 객실에는 접이식 침대와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돔형 창문, 고속 인터넷이 제공된다. 탑승객은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 연구자도 포함될 예정이다. NASA의 전 국장 빌 넬슨은 “ISS는 인류가 어떻게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증명한 위대한 실험이었다”며 “이제 NASA는 직접 운영자가 아니라 임차인으로 전환해, 더 먼 우주 탐사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모든 것이 정부 주도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상업 파트너와 국제 파트너들이 함께하는 시대”라며 변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ISS를 더 높은 궤도로 옮겨 보존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플로리다중앙대학의 우주정책 전문가 그렉 오트리는 “ISS는 인류가 만든 가장 놀라운 구조물 중 하나로, 이를 폐기하는 것은 버킹엄궁을 해체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NASA는 복원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이를 포기하고, 스페이스X에 약 10억 달러를 지급해 정거장을 안전하게 대기권으로 떨어뜨리는 임무를 맡겼다. ISS가 사라진 후에는 중국의 ‘톈궁(天宮)’이 유일한 정부 운영 우주정거장이 된다.
민간 우주정거장은 단순히 과학 연구를 위한 공간을 넘어, 우주 관광과 산업 생산의 중심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우주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반도체용 실리콘 결정체나 생명공학 제품을 더 정밀하게 제작할 수 있다. 오트리 교수는 “향후 10~20년 안에 우주 관광의 티켓 가격이 수천 달러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주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천체생물학자 케일럽 샤프는 저서 The Giant Leap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40억 년의 지구 생명사에서 처음으로 행성을 벗어나 지구를 바라보는 존재가 됐다”며 “우주 정거장은 인류가 우주로 확장해 나가는 첫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민간 우주정거장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냉정한 시각도 덧붙였다.
2030년대에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달 탐사 계획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일부 학자들은 저궤도 우주정거장이 장기적으로는 달과 행성 탐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우주정거장의 퇴역은 단순한 시설의 해체를 넘어, 인류가 지구 밖에서 생활해온 25년의 실험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앞으로의 민간 우주정거장 시대, 더 나아가 인류의 우주 진출 역사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