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스트라토』, 가상의 소설에서 되살아난 지극히 현실적인 프로파일러
소설 『카스트라토』, 가상의 소설에서 되살아난 지극히 현실적인 프로파일러

[미디어파인=박수빈의 책 그리고 삶] 프로파일러이자 범죄추리소설가 표창원은 자신의 첫 소설에서 프로파일링 ‘누구’를 찾는 직업이 아닌, 피해자의 특성과 범죄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행동 증거 등을 분석해서 추정하는 고도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파일러도 인간이기 때문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정답’일 수도 있는 용의자의 특성에 맞게 증거와 정황, 현장 및 행동 분석 내용을 짜맞추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평생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사건을 담당해 온 전문가로서의 관점과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한 비화를 가상 인물의 입으로 설명한 것이다. 프로파일링은 특정인의 특징을 분석하여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는 기법으로 사건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상태나 경향 등을 특정 지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수사법이다.

범죄 현장에서 수사의 한계점에 대해 공공적으로 밝히는 일은 대표적 금기사항 중 하나다. 수사 상황에 대한 정보 노출과 이후 전개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러는 그저 묵묵히 피해자의 특성과 범행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행동 증거 등을 종합 분석해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왜’, ‘어떻게’ 범행을 한 것인지를 추정해야만 한다.

범죄 추리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는 국내 출판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범죄소설, 그 중에서도 전문 프로파일링 기법을 고스란히 적용해 창작한 소설이다. 책은 일명 카스트라토 사건이라 불리는 흉측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건에 투입된 주인공 이맥은 현직 프로파일러다. 범인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과거와 연결고리를 찾으며 인간적인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프로파일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극복의 과정을 현실의 감각으로 그려낸다.

글쓴이 표창원은 경찰, 대학교수, 국회의원, 방송인을 거치고 최근에는 신인 소설가로 데뷔했다. 갑자기라고 표현하기에는 그간의 그의 행보가 눈에 띈다. 수년 전부터 방송에 나와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꾸준히 이야기해 왔고, SNS를 통해서도 예고를 해왔기에 그렇다. 알고 보니 무려 10년에 걸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이제야 출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 수사 현장에서 분노와 자괴감에 휩싸여 품속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면서 공상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대표 사례로 지난 1991년 연말, 고3 여학생 성폭행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해 피의자 신문을 하기 전 경찰서를 찾아 엄벌을 요구하는 피해자와 모친에게 당부했다 한다. 당시는 성폭행이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였기에 합의나 고소 취하가 아니라면 반드시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건 피해자 모친이 전해준 고소취하서였다. 알고 보니 부유하고 영향력이 큰 지역 유지였던 피의자의 부친이 피해자 가족을 전방위로 압박해서 결국 합의를 받아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비열하게 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경찰서를 떠나는 범인을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30년이 지나 꺼내는 것은 한 편의 소설이다.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소설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시스템도 만들어냈다. 첫 번째 사건 발생 이후 분석을 맡은 이상범죄분석팀 ACAT가 그것이다. 실제 경찰청엔 존재하지 않는 부서로 작가인 표창원이 유학 시절, 네덜란드 사건 분석팀의 전문 업무와 영국 경찰청의 적극적인 사건 수사 모습을 보며 착안한 개념으로 창작됐다.

소설 속 ACAT는 경찰이 검찰 지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강력 사건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특별히 설치된 부서로 그려진다.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직해서 현장 형사, 지금의 CSI 과학수사대인 감식 요원을 거쳐 독학으로 대한민국 경찰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된 마일영 경정이 팀장을 맡고, 범죄 수사 심리학의 권위자인 전 경찰대학 교수 진현수 박사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로 팀을 꾸린 경찰 역사상 최초의 이상강력범죄 수사 드림팀이다.

소설가 표창원은 소설 ‘카스트라토’를 투고 추상화라고 말한다. 현실 속 수많은 인물, 사건, 상황들의 특징들을 추출해 확대, 축소, 변형 및 혼합과 분리를 거쳐 작가만의 관점과 감성으로 새로 만들어 낸 이미지라는 설명이다. 해석과 의미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넘긴다. 현실 속 닮은 꼴을 찾거나 작가의 의도를 추리해 보는 재미도 한껏 즐기시기를 바란다면서 말이다.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콘텐츠 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뉴미디어, SNS 플랫폼 등에서 고객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웹진·잡지사, 홍보기획사, 언론사, 대학연구원 등을 거치며 다양한 업무를 맡아 담당해 왔다. 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며 문화·예술·인문 분야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논문으로는 <수용자의 정치성향과 언론사의 이념성 지각이 적대적 매체지각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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