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언어의 숨결, 한글의 기억을 따라
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언어의 숨결, 한글의 기억을 따라

[미디어파인=박수빈의 책 그리고 삶]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담고, 시간을 넘어 기억을 전하는 존재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바로 그 언어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니다. 해례본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이 있고, 한글이 걸어온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스며 있다.

언어의 주체성, 그리고 한글의 목소리

주수자 작가는 해례본을 쫓는 국문학자 김태준의 삶을 통해, 한글이라는 존재가 지닌 힘과 의미를 탐구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한 전기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바로 ‘한글’이 직접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 숨 쉬고,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한다는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독서를 넘어 한글과 대화하게 만든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생존해온 존재다. 작가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글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형상화한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언어가 지닌 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소설이 품은 한글의 시간

이야기는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른다. 책은 김태준의 고난의 역사와 함께 정치적 탄압 속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일화를 한글의 의인화로 흥미롭게 묘사했다. 문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는 힘이라는 것이 작가의 집필 의도다. 소설 속에서 한글은 그 증인이자 주인공의 역할을 맡는다.

주수자 작가는 이러한 서사를 마치 ‘천일야화’처럼 엮어낸다. 김태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광대의 이야기, 조선 시대 언문 투서 사건, 그리고 한글을 둘러싼 이념의 대립까지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그 안에서 한글은 한낱 문자 체계가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품고 전해지는 유산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수자 작가는 해례본의 행방을 쫓는 김태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한글이 탄생한 순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긴밀하게 엮어낸다. 그 과정에서 한글이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생생한 존재임을 강렬하게 부각한다.

한글,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책을 덮고 나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질문이 남는다. ‘언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한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소설은 한글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던 시간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지금 한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한글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간판에서, 브랜드에서, 공공 언어에서조차 한글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은 이 책이 던지는 질문과 연결된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담고, 문명을 지탱하는 힘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이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그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한글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콘텐츠 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뉴미디어, SNS 플랫폼 등에서 고객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웹진·잡지사, 홍보기획사, 언론사, 대학연구원 등을 거치며 다양한 업무를 맡아 담당해 왔다. 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며 문화·예술·인문 분야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논문으로는 <수용자의 정치성향과 언론사의 이념성 지각이 적대적 매체지각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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