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조동범 시인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서촌을 걷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먼 과거를 산책하는 것만 같다. 한옥과 근대 건축물 그리고 요즘 건물이 뒤섞여 있는 서촌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만 같다. 다가구주택이 많은 서촌 길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은 근대의 어느 시간이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근대 초기의 건축물과 유서 깊은 공간, 그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상점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나는 구도심의 어느 동네의 모습과 더 닮아 있다. 높거나 위압적이지 않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동네의 모습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곳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동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상점과 새로 생긴 카페 등의 공간이 요즘 유행하는 ‘힙’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많다는 점에서 관광지로 변해버린 다른 곳들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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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어느 지역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어 관광지처럼 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아니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집값과 임대료가 급등하기 시작하고, 원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의 삶과 생계를 이어가던 집과 상점은 이내 외지인들로 붐비게 된다. 집주인은 건물을 팔고 떠나고, 세입자는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떠난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관광지로 변해버린 동네에서 사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 되기도 한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집은 더 이상 휴식의 공간일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대문을 열고 마당까지 들어와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촌 역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원주민들 일상이 방해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촌의 풍경은 다른 곳과 달리 주민과 관광객들이 비교적 잘 어우러지며 서촌만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나와 서촌을 향해 조금만 올라가면 왼쪽으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가 보인다. 서촌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맛집 때문이기도 했다. 서촌을 방문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이곳에 가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297만원이었던 임대료를 1200만원으로 올리며 세입자의 반발을 샀던 궁중족발 사태는 서촌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맛집을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서촌의 참 모습을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이 서촌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서촌 문학예술 기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출발점으로 삼는 곳은 ‘이상의 집’이다. 이상이 살던 집의 일부를 기념관으로 꾸민 이곳을 방문하면 이상과 관련된 자료와 삶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을 이상의 생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상의 집’은 이상이 세 살에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들어가 이십여 년을 살았던 곳이므로 정확히는 이상이 거주했던 집터이다. 지금의 ‘이상의 집’은 이상 사후에 새로 지은 집이다. 이상이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사직동이다. 이상의 집에서 출발하여 서촌의 골목을 따라 가다보면 무수히 많은 역사적 장소와 마주하게 된다.

‘이상의 집’에서 수성동 계곡에 이르는 길에서 문학, 역사, 예술과 연관된 다양한 장소와 마주할 수 있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곳들도 많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관리도 잘되어 있고 찾아가기도 쉽다. 이곳은 애초에 친일파 윤덕영이 딸과 사위를 위해 지은 주택이었다. 이후 몇 차례 소유자가 바뀐 끝에 1973년 박노수 화백이 구입하여 2011년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이 집을 비롯하여 서촌 일대 상당수가 친일파 윤덕영의 소유였는데, 지금도 윤덕영과 관련된 흔적이 서촌 골목에 아무런 설명 없이 방치되어 있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윤동주 하숙집 터’라고 쓰인 작은 간판을 볼 수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택 담벼락에 붙어 있는 간판만이 이곳이 윤동주가 살았던 곳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겸재 정선이 그린 수성동 계곡 풍경(왼쪽) /2010년 9월 수성동 계곡 복원 현장(오른쪽) /서울역사박물관 편, 『서촌: 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 서울시, 2010, 146쪽.
-겸재 정선이 그린 수성동 계곡 풍경(왼쪽) /2010년 9월 수성동 계곡 복원 현장(오른쪽) /서울역사박물관 편, 『서촌: 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 서울시, 2010, 146쪽.

서촌의 끝인 수성동 계곡에서는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등장하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그림에 등장하는,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를 직접 볼 수 있다. 수성동 계곡에서 내려오는 길에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입구인 송석원터가 있고, 일제강점기에 생긴 통인시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특히 이중섭, 서정주 등이 묵기도 했던 보안여관이 원형을 간직한 채 미술관으로 변신하여 관람객들을 맞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신익희 가옥, 김상헌 집터, 정철 집터와 시비, 선희궁 터, 우당기념관, 자수궁터, 이상범 가옥, 노천명 가옥, 김가진 집터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서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이상과 관련된 장소가 많다. 종로 인근을 오가며 한 번쯤 지나쳤을 만한 곳이다. 지금은 이상과 관련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오래전 이상의 자취가 있는 곳임을 알고 그곳을 지나간다면 남다른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1933년 이상이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에 차린 <제비다방>이 있던 곳은 지금의 종각역 앞 농협 빌딩 자리(종로1가 33번지)이다. 그리고 1936년 6월 친구인 화가 구본웅의 이모인 변동림과 결혼하여 짧은 신혼생활을 한 곳은 청계천 바로 옆인 ‘다동 33번지’이다.

서촌을 걷는 문학, 예술, 역사 기행은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과 관련된 것이 많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의 근대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서촌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먼 과거 같지만 불과 수십 년 전일 뿐이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지만 현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오래지 않은 것들 같지만 오래 전에 사라진 것이기도 하다. 서촌을 걷는 것은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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