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거리_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거리_서울역사박물관

[미디어파인 칼럼=조동범 시인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1990년대와 함께 홍대앞 거리는 획기적인 변화를 겪는다. 90년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홍대앞 거리는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대학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분식점이 있고 술집과 카페가 있고 작은 식당들이 즐비한 평범한 거리였다. 심지어 골목 한편에는 옛날식 이발소가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홍대앞 상권은 신촌 상권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인근 지역의 중심가는 단연 신촌이었다. 신촌을 중심으로 발달한 유흥가는 인근 이대앞과 더불어 1990년대 초반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중심 상권이었다.

홍대앞이 중심지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홍대앞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단순히 유흥가여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홍대앞으로 모여들게 된 것 역시 상권이 발달한, 먹고 마시고 놀기 좋기만 해서도 아니었다. 홍대앞은 대학로나 신촌 등이 그랬던 것처럼 고유한 문화를 앞세워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대학로는 연극 등의 공연 예술을 위주로 한 문화의 거리로 자리매김을 했고, 신촌은 대학가 특유의 정서와 문화로 출발했다. 일찍이 1950-60년대 명동이 그랬듯이 나름의 개성을 앞세워 고유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홍대앞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디밴드와 공연장 그리고 인디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카페, 클럽 등의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였다.

홍대앞은 인디문화를 중심으로 한 특별함이 있었기에 일반적인 유흥가와는 다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1세대 인디밴드인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디클럽이라고 칭할 수 있는 <드럭>에서 공연을 하며 홍대앞 문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황신혜밴드’ 출신의 뮤지션 조윤석 씨는 제대로 된 홍대앞 문화를 만들고자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문화를 중심으로 한 홍대앞 거리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면 할수록 그곳은 애초의 모습을 잃고 변했다. 사실 홍대앞이 이런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젊은 아티스트와 문화에 대한 감식안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어 괜찮은 분위기의 거리가 조성되면 여지없이 임대료가 오르게 되고, 결국 그곳을 만든 이들은 떠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 홍대앞 거리에도 일어났다. 홍대앞 상권이 상수동과 연남동 등으로 계속 확장된 것 역시 이러한 악순환 때문인 측면이 있다. 지금 홍대앞은 외국인 관광객과 10대들이 점령한, 인디문화가 주도하던 과거의 거리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상권의 변화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인근 상권인 신촌의 경우만 보더라고 알 수 있다. 불패의 상권일 것만 같던 신촌은 고유의 개성을 잃어버린 채 몰락한 적이 있다. 문화는 사라지고 오로지 상업적인 분위기만 남게 되었을 때 그곳은 몰락하게 된다. 신촌 상권이 어느 정도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한번 무너진 상권을 되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홍대앞 역시 마찬가지다.

홍대앞 프리마켓_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프리마켓_서울역사박물관

1990년대의 홍대앞은 단순한 거리가 아니다. 지금이야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곳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장소이며 새로운 문화와 감각의 시발점이었다. 물론 과거의 홍대앞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곳은 90년대와 인디문화의 시발점으로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지금의 상수동, 연남동 등으로 확산된 상권과 문화는 홍대앞 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홍대에서 밀려난 이들이 인근의 저렴한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홍대앞 상권이 인근 지역으로까지 확장되게 된 것이다. 과거와 다르다고는 하지만 홍대앞은 여전히 젊은 감각과 문화의 중요한 상징이다. 인근 지역으로 많은 이들이 떠났다고는 하지만 그곳은 아직까지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다.

홍대앞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소개한다거나 단편적인 장소성에 대한 논의로 한정되지 않는다. 홍대앞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과 문화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홍대앞은 압구정과 더불어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간이며 인디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이다. 따라서 홍대앞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번화가 상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며 인디문화를 중심으로 한 최근 문화의 경향을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홍대앞은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공간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문화를 의미하는 비공간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홍대앞 문화는 홍대앞 거리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감각과 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1990년대라는 감각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을 때 가장 주목받은 지역은 홍대앞과 압구정이었다. 그러나 압구정이 대중소비사회의 욕망과 소비로 대표되는 공간이었던 데 반해 홍대앞은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 장으로서의 공간이었다. 압구정과 홍대앞은 모두 젊은 세대가 주도한 공간이었지만 양상은 상당히 달랐다.

홍대앞 클럽 '스카'_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클럽 '스카'_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문화는 1990년대의 시대적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곳에 등장한 감각적인 문화는 X세대의 등장과 함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문화와 사고는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웠으며 문화에 대한 감각 역시 이전 세대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다. 홍대앞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의 감각은 이전 세대와는 연결고리를 갖지 않았다. 오히려 홍대앞 문화가 등장한 1990년대의 모습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더 강한 친연성을 갖는다. 홍대앞의 인디밴드가 그렇고 인디밴드들이 활동하던 클럽이 그러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각 역시 유사한 맥락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1990년대 문화 전반의 성격 역시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에 확산되기 시작한 게임과 인터넷이 그러하고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가 주류 질서 안으로 수렴된 부분 역시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홍대앞 문화는 새로움의 감각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홍대앞이 과거에 비해 상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감각적인 문화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리고 홍대로부터 시작되어 인근으로 확산된 상권 역시 고스란히 홍대앞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홍대앞은 여전히 개성적이고 특별한 문화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홍대앞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홍대앞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소규모 공간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홍대앞으로 몰려들었고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홍대앞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홍대앞이 과거 신촌의 전철을 밟고 몰락할지, 아니면 고유한 개성을 유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홍대앞 문화가 1990년대의 새로움을 만든 것처럼, 오늘날에도 의미를 가지려면 홍대앞만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홍대앞은 자생적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곳이다. 자생적 문화의 힘! 그것이야말로 홍대앞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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