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조동범 시인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이름은 특정 대상을 구분하여 지칭하는 고유명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상을 호칭하는 것이 이름의 주된 기능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상에 숨어 있는 내재적, 외재적 상징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코스모스’는 식물의 종(種)을 구분한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상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통해 그 어떤 감각이나 의미를 떠올리기도 하고 특별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코스모스’는 단순한 이름의 지위를 넘어 대상을 둘러싼 것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가 된다. 상징화된 기호를 통해 대상의 고유한 의미와 이미지를 구축하고 확장한다.

난지도 역시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명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난지도라는 지명 너머에는 더 많은 사회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의미는 난지도라는 상징을 구축하며 특정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지역적 차별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과 섞일 수 없는 계층과 계급을 형성하며 확대되기에 이른다. 난지도라는 이름이 대표하는 상징은 쓰레기이며, 그것은 빈곤, 더러움, 불모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난지도가 이러한 부정적 상징이 된 것은 1978년 이후로,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더구나 난지도가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된 기간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15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은 난지도를 쓰레기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 15년 동안 서울시 생활쓰레기 전부와 산업폐기물 일부가 매립되었고 인근 도시의 쓰레기도 난지도쓰레기매립장에서 처리했다. 당시에는 소각 처리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탓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직매립되었다. 당연히 많은 환경 문제가 발생했으나 비위생적인 직매립은 난지도쓰레기장이 폐쇄된 1993년까지 이어졌다. 15년 동안 난지도에 매립된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이집트 기자 대피라미드의 33배에 이르는 양이 난지도에 매립되었는데, 그 높이가 무려 95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났다. 일반적인 쓰레기매립지 국제 규격인 45m의 두 배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산이 만들어졌다.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은 단순히 쓰레기를 파묻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에서 난지도는 하층민의 빈한한 삶을 표상하는 지역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난지도 사람들의 삶은 유재순 작가가 펴낸 논픽션 『난지도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외에도 난지도의 삶을 다룬 소설로 정연희의 「난지도」와 이상락의 「난지도의 딸」이 있으며 이상락의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난지도에 쓰레기가 한창 매립될 때에는 이곳에 700여 명이 마을을 이루어 살기도 했는데, 93년 폐쇄될 무렵에도 400여 명의 사람들이 난지도쓰레기매립장에 거주했다.
93년에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이 폐쇄된 이후 쓰레기 반입과 매립은 금지되었는데, 딱 한 번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발생한 잔해를 매립한 경우이다. 당시 다른 매립지를 구하지 못해 삼풍백화점 잔해를 난지도쓰레기매립장에 매립했다. 현재 공원으로 조성된 난지도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에는 그날의 비극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묻혀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희생자의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이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을 뒤졌는데, 실제로 시신과 유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끝내 찾지 못한 실종자가 31명이라고 하니 난지도 어딘가에 이들이 묻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지도는 지금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월드컵공원에 속한 5개 테마 공원 중에서 쓰레기매립지가 있던 곳은 노을공원(제1매립지)과 하늘공원(제2매립지)이다. 인근에는 월드컵경기장과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조성되어, 버려진 땅이었던 난지도는 화려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은 쓰레기 산 둘레에 깊이 50m, 길이 6km에 달하는 차수벽을 세워 쓰레기 침출수를 막고 집수정을 통해 침출수를 처리하고 있다. 또한 쓰레기 산에 50cm 높이로 흙을 덮은 후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차수막을 깔았는데, 그 위에 다시 1m가 넘는 높이로 흙을 덮어 공원을 조성했다. 이로써 높이 98m에 이르는, 언뜻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공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의 본질이 쓰레기 더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공원 아래는 여전히 쓰레기가 썩고 있고 침출수와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
난지도는 현대사회가 지니고 있는 욕망의 배설물이 쌓인 곳이다. 난지도를 보면 현대사회의 욕망과 배설이 드러내는 이율배반을 확인하게 된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거대한 쓰레기 산은 욕망과 소비로 가득한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의 도시는 욕망을 취하기만 할 뿐이다. 또한 소비의 주체인 도시인들은 욕망 너머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욕망과 소비는 도시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의 배설물은 엉뚱한 곳에 감춰져 있다. 우리는 욕망과 소비의 이면을 알지 못한 채 도시의 화려함만을 마주하고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공원으로 탈바꿈한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의 모습에서 환경과 생태의 선순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실은 감춰져 있을 뿐이다. 2m가 채 안 되는 높이로 흙을 덮었다고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침출수와 가스 등의 환경 문제가 사라진 것 역시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에 소재한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의 ‘에너지/침출수 재생처리장’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서울의 혐오시설을 서울 밖에 설치한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우리에게 쓰레기와 빈곤, 더러움 등으로 기억되는 난지도지만 원래의 난지도는 이런 이미지와 사뭇 다른 곳이었다. 난지도라는 이름은 난초와 지초가 핀 아름다운 섬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난지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한강과 난지 샛강 사이에 있던 난지도는 서울의 대표적인 휴양지이자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다. 난지도의 아름다운 모습은 조선시대의 기록이나 지도,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난지도를 풍수가 좋은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김정호는 『경조오부도』와 「수선전도」에 꽃이 피어 있는 섬이라는 의미인 중초도로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난지도의 아름다운 모습은 겸재 정선의 그림 <금성평사錦城平沙>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아름다운 섬이었던 난지도가 쓰레기의 상징이 되는 데에는 불과 15년이 걸렸을 뿐이다.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된 15년은 난지도가 품어온 모든 것은 뒤바꾸어 놓았다. 15년의 길지 않은 기간으로 인해 난지도라는 이름은 쓰레기와 더러움, 빈곤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심지어 난지도라는 이름은 쓰레기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생태공원으로 변한 지금의 난지도 모습에서 더 이상 쓰레기매립장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난지도의 쓰레기를 덮어버렸기 때문에 쓰레기 섬 난지도의 기억과 상징 역시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난지도가 여전히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이 현대의 욕망과 소비의 배설지로, 빈곤과 더러움과 혐오의 생생한 현장이었다는 점 역시 변치 않는 사실이다.

[조동범 시인]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