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칼럼=조동범 시인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롯데월드는 하나의 기호이자 상징이다. 그곳은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라 현대문명사회의 비극성이 감춰진 공간이며 대중소비사회의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다. 지하철2호선과 8호선이 교차하는 잠실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모험과 신비의 나라 <롯데월드>에 입장할 수 있고,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에 갈 수 있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것은 놀이공원과 쇼핑몰과 호텔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곳은 하나의 도시이자 왕국이다. 강남 한복판에 이렇게 거대한 왕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곳은 절대 군주가 지배할 것만 같은, 무너지지 않는 세계이다. 왕국의 일상은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풍요롭고 즐거운 날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다.
롯데월드와 같은 놀이공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극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모험과 신비, 꿈과 낭만의 세계인 놀이공원이 비극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문명사회가 비극적 세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근대 이후 욕망으로 가득한 비극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는 욕망으로 가득하며 즉물적 세계인 현대문명사회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은 현대문명사회의 비극성을 감춘 채 꿈과 희망과 낭만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놀이공원은 현실의 비극을 감추고 고통을 즐거움으로 위장한다. 놀이공원을 만든 이들이 애초에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렇다. 고통스런 현실로 가득한 현대문명사회를 행복한 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
놀이공원은 현실의 고통을 행복한 세계로 위장하는 공간이다. 현대문명사회는 이성적 세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놀이공원은 비이성적 현실 세계보다 더 강력한 비이성적 세계(때로는 유치하게 보이기까지 한)를 펼쳐놓음으로써 현실 세계의 유치함을 감추려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내 현실의 비극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놀이공원은 현대문명사회를 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위무의 공간이자 착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세계이다. 또한 놀이공원은 꿈과 희망으로 위장한 자본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놀이공원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모든 것은 소비와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즐거움과 기쁨의 크기는 우리가 지불하는 금전적 크기와 비례한다. 놀이기구를 즐기고 나오는 곳에는 (현실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쁘고 깜찍한 상품이 진열되어 있으며, 그곳에서의 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우리는 지갑을 열 준비를 해야 한다. 심지어 돈만 지불한다면 놀이기구를 빠르게 탑승할 수도 있다. 놀이기구를 대기 시간 없이 탑승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시간마저 돈으로 환원하는 놀이공원의 즉물적 세계관이 투사된 것이다. 놀이공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시간마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바꾸는 욕망의 바벨탑이다.

롯데월드는 서울의 중심가 중 한 곳인 잠실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놀이공원과 차이가 있다. 서울 중심가 한복판의 놀이공원이라니! 정말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놀이공원들은 대부분 도심을 벗어난 곳에 있거나, 도심 인근에 있다고 하더라도 주거지나 상업지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롯데월드는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의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 있는 놀이공원은 대비된 풍경만큼이나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놀이공원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고, 일을 하고 소비를 하는 업무지역과 상업지역이 롯데월드와 뒤섞여 있다. 그러니까 그곳은 현실적인 세계 속에 자리 잡은 환영이다. 이런 공간은 때로는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 매직아일랜드가 있는 이곳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그 어떤 환상을 부여하며 다가온다.
놀이공원이 현실의 비극을 감추는 상징으로 작용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현실 공간 속에 존재하는 환영이라는 점에서 다른 놀이공원과 차이가 있다. 다른 놀이공원들은 놀이공원이라는 상징 기호와 현대성의 비극이라는 대척점을 눈앞에 직접 펼쳐 보이지 않는다. 놀이공원과 현실의 대비된 상징 기호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일 뿐이다. 하지만 롯데월드라는 환영과 현실 공간의 대비는 두 세계의 상징을 극적으로 현재화한다. 그것은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서 현대문명사회가 아름답고 멋진 것이라는 주문을 걸고 있는 것만 같다. 롯데월드라는 환영은 그런 주문을 걸며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잠입한다.
롯데월드라는 거대한 왕국은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현실 속의 그것은 그러나 신기루처럼 공중을 부유하다 이내 사라져버릴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롯데월드를 비롯한 놀이공원들은 지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놀이공원은 환상과 현실을 분리시켜 삶이 행복한 것이라는 거짓을 믿게 만든다. 놀이공원은 현실 공간에 실재한다는 점에서 진짜이고, 우리의 진짜 삶과 다른 환영을 만든다는 점에서 가짜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놀이공원을 공간의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뿐만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현실 공간에서의 시간과 다르다.

놀이공원은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눈앞에 선보임으로써 우리가 잊고 지냈던 추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경험했던, 혹은 꿈꿔왔던 세계와 같지 않다.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로 위장된 놀이공원에서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삶의 고통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실제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할 뿐이다. 물론 그러한 놀이공원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놀이공원은 삶의 활력소이기도 하다. 그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놀이공원이 주는 환상, 모험, 행복, 즐거움, 꿈, 희망 등의 감정이 삶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 역시 명확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현실에 그런 세계가 온전히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은 현실의 고통, 좌절, 절망, 무미건조함, 지루함 등을 잠시나마 잊게 함으로써 우리를 현실 너머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제 롯데월드는 롯데월드타워와 짝을 이룸으로써 완벽한 왕국을 이루었다. 롯데월드 타운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이제 없어 보인다. 아니, 그곳은 애초에 비현실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신기루처럼 허망한 것일 테지만, 현실의 한가운데에 단단하고 웅장하게 서있는 실존이다. 그것은 신기루가 아니다. 롯데 왕국은 슬픔의 영역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언제까지고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이 존재할 뿐이다. 롯데월드에서 꿈과 낭만을 경험하고 쇼핑몰에서 욕망을 채우는 것.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고 최고급 호텔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보내는 하루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런 공간에 현실의 불행이 끼어 들 틈은 없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얼마나 큰 불행처럼 다가오는가. 잠실역에 내려서 걷는 롯데 왕국의 거리는 실재인가 아닌가?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은 과연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롯데 왕국을 바라보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조동범 시인]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조동범 시인]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