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코시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미쓰코시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미디어파인 칼럼=조동범 시인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경성의 백화점은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후, 1930년대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경성에는 일본 자본이 개업한 대표적인 백화점이 네 곳 있었고 조선인이 운영하는 화신백화점과 동아백화점 등이 있었다. 경성이 근대적 도시로 변해가는 가운데 백화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인구가 30만 명에 불과한 경성에 이렇게 많은 백화점이 개업한 것은 의외의 일이다. 경제 공황기와 맞물려 일본이나 중국의 백화점이 경영난에 빠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인구가 1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각 지역의 여러 도시까지 백화점이 진출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백화점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근대적 공간이자 세계였다. 백화점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한 곳이었으며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기호였다. 이러한 백화점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은 근대에 대한 선망을 만들어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백화점은 근대적 세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곳이다. 그곳은 단순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전제로 근대적 유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또한 인간의 욕망이 극대화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근대 이후의 우리 삶이 추구하게 된 세속적 욕망의 장이기도 하다.

근대적 세계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을 두른 백화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30년대이다. 그러나 일본 자본은 20세기 초부터 백화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상점을 앞세워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04년경에 서울에 진출한 히라타(평전)상점이 1926년 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히라타백화점을 열었고, 히라타상점과 같은 해에 경성에 진출한 조지야 역시 1929년 남대문로(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본점을 증축하고 백화점을 개업했다. 이외에도 1905년 대구에서 시작하여 1911년 충무로에 들어온 미나카이백화점은 1929년 확장하여 문을 열었다. 일본 자본이 세운 백화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미쓰코시백화점이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쓰코시백화점은 1906년 경성에 임시 출장소를 열어 영업을 시작했는데, 이후 1916년 르네상스식 3층 건물을 짓고 1925년 건물을 증축하여 영업했다. 미쓰코시백화점이 본격적인 백화점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30년 충무로 입구(현 신세계백화점)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신관을 건립하면서부터이다. 미쓰코시백화점은 근대적인 유통과 판매 시스템을 최초로 갖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에서도 미쓰코시백화점을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자본 이외에 우리 자본으로 설립한 백화점도 있었다. 최남이 1932년 종로 2정목 5번지에 동아백화점을 세웠으며 같은 해에 박홍식이 우리에게 이름이 익숙한 화신백화점을 북촌 지역에 열었다. 이후에 최남은 경영 부진으로 동아백화점을 화신에 넘겨주었다.*

화신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화신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구 30만 명에 불과한 도시 ‘경성’에 이렇게 많은 백화점이 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인구 15만 명인 평양에 조지야, 미나카이, 김응수의 평안백화점이 있었고, 부산이나 10만 명이 겨우 될까 말까 한 대구, 목포, 흥남, 군산, 광주, 대전에도 미나카이나 조지야가 진출”*했다. 그런 가운데 소매상으로 크게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은 인구가 “4-5만 명 정도 되는 도시를 찾아 백화점을 만들려고”* 몰려가기도 했다. 근대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근대를 대표하는 공간인 백화점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백화점이 우리의 삶 곳곳에 빠르게 뿌리 내린 것은 일제가 조선의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일 테다. 그런 가운데 백화점은 조선의 근대적 삶의 풍경 속으로 빠르게 녹아들었다. 근대가 일제강점기와 함께 시작되었음에도 근대 자체를 배척하지 않았던 것처럼, 백화점은 조선의 근대적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실제로 대중소비사회의 물질적 욕망은 생각보다 깊숙하게 당시의 삶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신문에는 “기말시험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는 ‘여학생’들의 손에 ‘미쓰코시’나 ‘조지야’백화점에서 산 화장품”**이 들려 있다거나 “통근, 통학하는 전차 안의 손잡이를 들고 잡고 선 ‘모던걸’의 팔뚝에는 ‘황금시계와 보석반지’가 번쩍인다”**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우리의 삶에 근대에 대한 환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조선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감안했을 때, 백화점이 빠르게 확산된 점은 다소 의외이다. 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상과 선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 소비가 빠르게 우리 삶을 장악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당시의 백화점 모두가 요즘 생각하는 대형 유통망의 형태와 규모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이 인구 수 만 명 지역까지 파고든 사실은 놀랍다. 백화점 시스템이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근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근대를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백화점 터에 여전히 백화점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쓰코시백화점은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물 원형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조지야백화점 역시 남촌 지역에 있었는데, 현재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근대 경성의 모습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서양식 건물과 포장도로일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양복과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그들이 즐겨 찾던 서양식 바(bar)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한 근대의 모습은 당시를 떠올릴 때 가장 흔하게 상상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근대 도시 경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근대적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백화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제강점기에 미쓰코시백화점이나 화신백화점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저 막연하게 백화점이 있었다고 알고 있을 뿐이지 당시의 백화점이 어느 정도로 근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기림은 수필 「바다의 유혹」에서 백화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백화점의 ‘쇼윈도우’ 속에서는 빨갛고 까만 강렬한 원색의 해수욕복을 감은 음분한 ‘셀르로이드’의 ‘마네킨’ 인형의 아가씨들이 선풍기가 부채질하는 바람에 ‘게이프’를 날리면서 마분지의 바다에 육감적인 다리를 씻고 있다. ‘쇼윈도우’ 앞에 앞으로 기울어진 맥고모자 아래서는 우울한 눈들이 만든 명사십리의 솔밭을 바라본다. (김기림, 「바다의 유혹」, 『김기림 전집 5』, 심설당, 1988, 322쪽.)

미나카이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미나카이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김기림이 바라본 백화점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아케이드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마치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드러낸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근대적 세계를 보는 것만 같다. 김기림의 「바다의 유혹」에 드러난 20세기 초반 도시 경성의 모습에는 근대의 물질적, 육체적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벤야민이 바라본 아케이드, 패션, 권태, 산책자, 거리 등의 모습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김기림의 글을 통해 우리는 근대적 세계의 욕망을 읽을 수 있으며, 무심하게 도시를 바라보며 일상을 견디는 듯한 모습에서는 근대도시의 산책자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다음 김기림의 시는 오늘날의 백화점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도
푸른 바다 대신에 꾸겨진 구름을 바라보며
엘리베이터로
5층 꼭대기를 올라간다.
거기서 우리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머-ㄹ리 고향을 떠나 있는 것처럼
서투른 손짓으로 인사를 바꾸고
그리고는 바닷가인 것처럼
소매를 훨씬 걷어 올리고 난간에 기대서서
동그랗게 담배연기를 뿜어 올린다.
(김기림, 「바다의 유혹」, 『김기림 전집 5』, 심설당, 1988, 344쪽.)

시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 “5층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런데 백화점 오층 꼭대기는 놀랍게도 흔히 공중정원이라고 불리는 옥상정원이다. 김기림의 시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근대적 공간과 사물이 등장한다. 화려한 인공조명인 일루미네이션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 시에서처럼 엘리베이터와 옥상정원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기림의 시에 이와 같은 공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 만큼 당시 경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도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 사회가 이미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근대적 면모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식민지 조선의 당시 풍경은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근대적 세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임을 감안한다면 김기림의 시에 등장하는 근대도시의 변모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김기림은 근대도시 경성에서의 삶을 비극적인 인공낙원으로 인식한다. 시인은 “푸른 바다 대신에 꾸겨진 구름을 바라보며” 백화점 옥상으로 간다. 백화점은 화려한 곳이지만 그곳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그저 “서투른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바닷가인 것처럼” 소매를 걷어 올리고 난간에 기댄 채 “동그랗게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린다”. 그것이 시대의 아픔을 견뎌야 하는 자의 고통이든, 아니면 근대적 삶의 일상을 견뎌야 하는 슬픔이든, 시인이 인식하는 우리 삶은 고통과 회한의 감정에 맞닿아 있다. 고통과 회환 속에 있는 이의 모습은 근대적 도시의 산책자의 모습이다.

백화점은 이처럼 풍요와 쾌락을 상징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근대적 욕망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사실 백화점만큼 근대적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도 드물다. 그런 만큼 백화점은 근대적 세계를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백화점은 현대적인 시설과 규모를 갖췄다는 점에서 공간과 관련된 근대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대량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에서 근대 이후의 욕망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또한 백화점의 대량 소비는 대량 생산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근대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백화점은 근대 이후의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인간의 욕망, 쾌락적 소비 등을 통해 근대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상품을 파는 상점이지만 그곳은 단순히 물성을 지닌 물건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소비, 욕망, 쾌락 등으로 이어지며 근대적 세계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조지야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조지야백화점 전경_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백화점은 근대적 욕망과 쾌락을 이미지화하여 우리의 의식과 세계 속으로 잠입한다. 백화점은 이성적 공간이 아닌 감각화된 세계이다. 그것은 이미지화한 세계이며 우리의 감각을 직접 자극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백화점은 단지 상품을 통해 대중소비사회의 욕망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은 공간을 이미지화함으로써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욕망을 충족하게 하는 시간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와 교양, 안락한 휴식과 여가를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백화점은 근대적 이미지의 총체적 공간이다.

지금 서울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백화점은 더 이상 도심 한가운데에만 있지도 않다. 예전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타백화점이 있던 남촌에는 여전히 신세계, 롯데, 롯데 영플라자(미도파) 등이 우리나라 대표 백화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제는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백화점이 도심과 부도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백화점은 더 이상 신기한 그 무엇이 아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근대적 욕망과 소비가 첨예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지나가며 오래전 일제강점기의 미쓰코시백화점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를 지나며 조지야백화점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어느덧 그곳에 일제강점기의 풍경이 떠오를 것이고,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가득한 거리가 펼쳐질 것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일제강점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지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조동범(작가,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저자)

* <문화원형백과 서울 근대공간>(국립중앙도서관, 2004)의 내용을 참조 및 인용함.
** 「1930년 여름5」, 《조선일보》, 1930.7.19.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시인-『저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도마뱀출판사)

[조동범]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보통의 식탁』,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청마문학연구상, 김춘수시문학상,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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