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이수정의 아름서재] 모든 인생은 기억과의 대화이다. 숱한 과거의 순간, 우리는 여러 갈래 선택의 기회와 마주한다. 우리가 선 현재는 그 선택을 따른 귀결이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때 사랑했으며, 그 사랑에 관한 기억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들의 사랑은 절절하고 정열적이거나 잔잔하고 애틋하다. 우리 마음에는 늘 ‘만약’이란 질문이 떠돈다. 그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는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시점, 우리 생을 되돌릴 수 있는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늘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상황, 기회, 우연, 우리의 성격이 만든 조합이 기억이라는 필연을 빚어냈다는 사실을. 불타오르던 한때의 사랑은 낡고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한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혹은 담담했던 기억의 편린이 끝까지 연소 되지 않는 잿불로 남는다는 사실을.

첫 번째 단편 ‘구멍’에 등장하는 ‘나’는 어린 시절, 친한 친구 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탈은 아버지가 불법으로 열어놓은 맨홀에 쓰레기를 버리곤 했다. 실수로 쓰레기를 봉투째 빠뜨린 탈은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는다. 구멍에 가득 찬 유독가스에 질식했기 때문이다. 탈의 형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때 있었던 일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편지를 내게 보낸다. 그의 마음속에는 동생의 ‘선택’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이었냐는 의구심이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은 채 떠돌고 있다. 나는 그때 있던 일을 세세히 묘사하는 장문의 편지를 쓰지만, 결코 부치지 못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독자는 ‘나’가 꾸는 꿈과 현실을 구별하기 힘들다. 이는 또 다른 무서운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내가 꾸는 꿈속에서 구멍에 잔디 봉지를 빠뜨리는 것은 탈이 아니라 나라고, 어떤 때는 내가 녀석을 밀어 넣는다고. 한번은, 내가 녀석에게 내려가 보라고 부추겼다고. 그것이 진실이에요, 라고 나는 그분들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그 부분은.’ (본문 15쪽)
단편 ‘코요테’에서 ‘나’의 아버지는 실패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런 그에게도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이후로 십여 년이나 아무 영화도 완성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경제력에 빌붙어 살아간다. 그들 부부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예술가로서의 고집과 재능을 사랑한다. 나 역시 ‘젊은 천재의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비평가가 쓴 기사를 떠올리며 아버지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아버지는 늘 촬영 때문에 집을 비우고, 어머니는 천천히 그의 빈자리에 익숙해진다. 다른 남자와 의미 없는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완벽하게 착한’ 남자, 혹은 ‘악의는 없지만 약간 지루한’ 남자들이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변호사 데이비드 역시 ‘나’에게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진실하지 않은 아첨이나 떨고 거짓된 애정이나 쏟아붓는’ 사람이다. 그는 잘생기고 점잖은 사람이지만 그런 점 말고는 평범한 남성일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그의 관계는 점차 진지해지고 아버지의 정신 상태는 조금씩 붕괴한다. 아버지는 데이비드를 공격하고 오랜 시간 재활 시설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결코 평범해질 수 없었다. 언젠가 ‘나’가 코요테를 일반 개처럼 길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과는 다르다. ‘나’가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 닥친 비극적 결말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미래에 대해 한 점 의심 없이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거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영화의 프리미어 시사회 날 밤에 찍은 사진이 있다. 그들은 뉴욕의 어느 소극장 밖에 서 있고, 아버지는 위쪽으로 보이는 마르키의 불빛을 가르키고 있다. 아버지는 슈트 차림으로, 어머니는 긴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둘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본 내 기억 속 유일한 때다. 그들은, 그 둘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자신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무언가에 맞서, 서로를 감싸안은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본문 45쪽)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사랑의 빛깔과 깊이, 온도의 스펙트럼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나’는 물리학 과목 기말고사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을 풀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은 시험을 중도 포기하지만, ‘나’는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이한다. 교수 로버트는 ‘나’에게 차를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로버트의 아파트에서 그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나’는 자신의 부모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로버트에게 별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그들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낸 이유를 묻자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니까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 말은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 관한 윤리이기도 하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따뜻한 일렁임’. ‘또래 남자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열뜬 흥분과는 또다른 종류의 감정, 좀더 부드럽고 보다 포괄적인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의대에 다니는 남자친구 콜린이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기고 고집이 세고 세계에 대해 건강한 낙관이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콜린은 로버트가 아닌 모든 것’이었다. 콜린은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콜린과의 관계는 안정적 가정, 미래에 닥칠 소소한 기쁨,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나’가 콜린에게 느끼는 사랑은 단순히 속물적이고 실용적인 감정이 아니다. ‘나’는 로버트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콜린을 사랑한다.
하지만 로버트와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우정은 이윽고 사랑을 닮아간다. ‘나는 저녁에 콜린과 만나는 것을 고대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게 됐다.’
‘우리는 우리 삶의 내밀한 사정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를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우리가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추억하기조차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유년의 순간들.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본문 106쪽)
마침내 그들은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두려움과 마주한다. 로버트는 이 관계에서 ‘나’가 그를 미워하게 될까봐, ‘나’는 자신이 로버트를 미워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나’와 로버트가 데이트하는 현장을 콜린이 목격함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끝난다. ‘나’는 콜린과 결혼해 대학을 떠난다. 수련의의 부인으로 생활하며 외롭고 지루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동안 로버트와 나는 서신을 나누지만, 그조차 어느덧 중단된다. 뒤늦게 로버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나’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와 콜린은 여러 인생의 풍파를 함께 겪은 사이로 거듭난다. ‘나’는 추억한다. 로버트와 사랑을 나누겠다고 결심하고 그의 침대에서 옷을 벗고 기다렸던 어느 밤을. 오지 않는 로버트를 기다리다 돌아섰던 그 밤을.
‘강가의 개’에 등장하는 ‘나’는 말썽꾸러기 형 때문에 고통받는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존재는 가족이다. 이처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혈연이란 관계는 그들에게 족쇄이며 낙인이다. ‘나’는 형이 친구에게 저질렀을지도 모를 성범죄의 가능성 때문에 맘졸이며 살아간다. 단편 ‘구멍’에 나오는 탈의 형처럼 그날의 진실에 관해 친구에게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어릴 때 형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려 이웃집 차의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우던 ‘나’에게 이웃 아저씨가 이야기한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나’의 과거를 보듬어 주는 단 하나의 기억이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 속 인물들은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기억으로 위안받기도 한다. 그 기억은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없는 성질의 무엇이다. 비밀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기억은 세월의 더께 속에서도 더 생생해지거나 또 다른 의미를 덧붙여갈 뿐이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비밀의 무게를 얹고 살아간다. 비밀은 상처이며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친구를 집어삼킨 구멍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심연을 간직한 존재이며, 뚫린 만큼의 구멍의 깊이와 너비를 말없이 견뎌야 할 존재다.
앤드루 포터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서 1972년 태어났다. 뉴욕의 바사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2008년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펴낸다. 이 책으로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 상을 받았다. 2011년 한국에 번역된 이 소설집은 2년 뒤 작가 김영하가 팟캐스트에 소개하며 입소문을 탔다. 2019년 발간된 지 8년만에 역주행하며 베스트 셀러가 된다. 장편 소설로 ‘어떤 날들’이 있다. 2024년 6월 저자는 ‘어떤 날들’의 북토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한국을 포함해 독서율이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앤드루 포터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독서라는 경험은 너무나 고유해서 어떤 기술로도 대체되지 않습니다. 영원히 책이라는 경험은 우리에게 매혹적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제가 좀 낙관적인가요?’ 앤드루 포터는 현재 트리니티 대학교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김이선 옮김, 문학동네, 2024년 1판 (21쇄), 원제: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이수정 작가]
1973년산. 이화여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투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소설 쓰기보다 읽고 분석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재능이 있음을 깨달은 행복한 서평가이자 독서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