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이수정의 아름서재] 주변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게다가 자살한 그이가 누구보다도 가까운 가족이라면? 남겨진 사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은 이들은 오랫동안 망자의 마음에 동화하려 애쓰며 그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과정을 추적한다. 물론 그것은 추측일 뿐,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다. 누구도 망자의 마지막 심정이란 미궁에 가닿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페터 한트케는 어떤 감상도 없이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조차 자신의 글쓰기 철칙을 버리지 않는다. 독자는 이 ‘심리 부검’을 통해 한 여인이 자의식을 지닌 채, 개인으로서 사회에 서고자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소망 없이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나 이 사회가 한 여인이 품는 소박한 소망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정한 시간은 그녀가 떠난 지 거의 칠 주가 되었을 무렵이다. 누군가는 아직 애도의 시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며. 하지만 그는 ‘장례식 때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너무도 강렬했던 욕망이, 그녀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고 얼빠진 듯 말문이 막혔던 그때 상태로 되돌아가기 전에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욕망을 느낀다. 어머니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글로 옮겨야겠다는 작가로서의 욕망은 슬픔보다 크고 강렬하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마침내 더 이상 지루해하지 않고, 몸뚱이에 저항감도 느끼지 않고, 거리를 두겠다고 애쓸 필요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내가 그전처럼 고통 없이 잘 지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본문 10쪽)
저자는 어머니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돌아본다. 그의 외증조할아버지, 또 그의 외할아버지는 근대 이후에 태어났으나 농노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저자의 외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고 했지만, 몇 번의 인플레이션을 겪고는 가난뱅이로 죽어간다. 살아남은 아들은 ‘스무 명이나 되는 일꾼을 거느린’ 목수 십장으로 일했다. 그는 이제 ‘저축’이 아닌 ‘투자’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여성의 삶은 나아진 바가 없다. 여성의 삶은 이미 주어져 있었으며 어떤 미래도, 가능성도 엿보이지 않았다. 5남매 중 넷째인 그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음에도 의무교육이 끝난 뒤, 더는 교육받지 못했다.
‘문제는 어머니가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배우고 싶어했다. 그건 그녀가 아이였을 때 무언가를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난 내 자신을 느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건 최초로 가진 소망이었고, 그 소망을 끊임없이 말하다 보니 급기야는 고정관념이 되어버렸다.’ (본문 19쪽)
어머니의 비극은 자의식을 지닌 한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다는 데에서 비롯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가출이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무작정 집을 나와 호숫가의 한 호텔에서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설거지 보조원, 객실 하녀 생활을 거친다. 즐겁고 행복한 도시 생활을 통해 어머니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차 대전이 시작되었으나 그녀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무지했다. 그녀는 전직 은행원 출신의 나치 당원이자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는 결국 미혼모가 되는데, 이는 그녀가 최초로 자신의 ‘소망’을 지니고 내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선택의 결과까지 예상하기에는 너무나 젊었다. 임신한 어머니는 그녀를 오랫동안 쫓아다니던 한 남성과 결혼했다.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김 때문이다. 그 결혼은 곧 실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의식을 갖춘 ‘개인’으로 살았던 짧은 처녀 시절은 곧 사라지고 만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단의 압력에 굴복한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한 이런 시골에서 여자가 독자적 삶을 갖겠다는 생각은 도대체가 시건방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표현되었던 거부의 표정들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진심이 되어버렸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기뻐할 때도 ‘여자답게 얼굴을 붉혀야’ 했다. (본문 29쪽)
전쟁이 끝나고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베를린으로 간 어머니는 도시의 삶에 적응한다. 도시의 삶 역시 그녀에게 일정한 삶의 양식을 강요한다.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그녀는 ‘도시 여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선택한다. 그녀는 하나의 유형(類型)에 맞춰 살기에는 너무나 똑똑한 데다가 계속 성장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생존하기 위해 소망하기를 멈춘다. 그녀는 자신을 도시에 거주하는 어느 특정한 범주의 여성에 속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눌러버린다. 그녀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소망할 때에도 비웃음으로써’ 그를 압박했던 체제에 아이들마저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영원히 위축되고 존재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문 56쪽)
어느 정도 집안 형편이 피고 그녀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자 어머니는 독서에 빠져든다. 작가가 된 아들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 토마스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를 읽는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 어머니는 생기를 되찾고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과 같은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전개된다. ‘문학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지나간 과거와는 화해할 수 없었고, 미래에 대해 계획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어머니가 ‘점차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여자가 되어갔다는 사실은 그녀와 주변 사람에게는 비극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신경증은 점점 심해진다.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다.
저자가 어머니의 죽음을 서술하는 방식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하다. 중요한 점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필연적 과정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장지로 가는 동안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데 대해 ‘일종의 긍지’마저 느낀다. ‘소망 없는 불행’에서 벗어나기란 때로 죽음이라는 방법으로도 부족하다. 사람들은 독자적 개인이 아닌 어떤 유형(類型)에 따라 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하나의 유형에 들어감으로써 개인은 부끄럽게 여겨졌던 외로움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망각했으며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때로는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 역시 자신이 꿈꾸는 진정한 소망을 모른 채 사회가 원하는 하나의 범주에 속해 살아가도록 강요받는다.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가 꿈꾸던 독자적 개인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요원하다고나 할까.
저자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시골 마을에서 전쟁과 가난을 체험했다.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자살하는 사건을 겪는다. 그리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1966년 첫 소설 ‘말벌들’을 출간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독일 문학계를 주도하던 47그룹 모임에 참여한다. 거침없는 독설과 파격적 문학관으로 주목받는다. 첫 희곡 ‘관객 모독’을 발표하여 연극계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소망 없는 불행’,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꿈꾸었던 동화의 나라와 작별’ 등을 발표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대본을 썼다.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실러상, 게오르크 뮈히너 상, 프란츠 카프카 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 대해 ‘독창적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작품’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수정 작가]
1973년산. 이화여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투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소설 쓰기보다 읽고 분석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재능이 있음을 깨달은 행복한 서평가이자 독서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