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동범 시인의 감성 에세이 '조동범 시인의 공간 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동범 시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강의하며 지내는 강의집필노동자입니다.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합니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시와 시론, 글쓰기와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낯선 세계의 흔적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발길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특별한 느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미디어파인 칼럼= 조동범 시인의 공간 읽기]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자연 상태로 파악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움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것이며 이기적 욕망으로부터 놓인 상태를 말한다. 또한 자연은 우리의 삶 이전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품고 있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근대 문명사회가 전개된 이후에 본향으로서의 ‘자연’과 결별한 채 비극과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자연을 갈망하고 그리워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가로운 자연 속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무와 숲, 강과 호수 같은 자연이 아니더라도 시골의 정취 역시 근대 이전의 자연스러운 삶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삶의 아름다움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에도 잘 드러난다. ‘무위자연’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나 이상적인 경지를 뜻한다. ‘무위자연’은 많은 이들이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 세계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삶은 자연과 가장 가까울 때 행복한 상태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 산이나 바다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정서적 충만함을 얻기 위해서이다. 시골길을 걸으며 느끼는 소박한 행복 역시 그렇다. 둘레길 걷기 열풍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봄이면 생각나는 청양 신양천 벚꽃길

봄이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충청남도 청양의 신양천 벚꽃길이 바로 그곳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벚꽃길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이어지거나 도심의 아파트 같은 삭막함을 배경으로 펼쳐진 경우가 많다. 물론 그곳의 벚꽃길 역시 봄날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더구나 상춘객들로 붐비는 벚꽃길을 걷노라면 피곤함이 몰려오기까지 한다.
그런데 청양 신양천 벚꽃길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일 뿐만 아니라 찾는 이도 거의 없기에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신양천 둑방길을 따라 4km나 이어진 벚꽃길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소박한 시골 마을과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길이 감동적이다. 청양 장곡사 벚꽃길이 널리 알려졌지만 신양천 벚꽃길의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무위자연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풍경

신양천 벚꽃길을 걷다 만나는 풍경을 떠올리면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음이 든다. 둑방길을 따라 이어진 벚나무 아래를 오가는 이는 마을 주민 몇이 전부다. 하천을 따라 새가 날아가기도 하고 시골집 몇 채가 모여 있는 마을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다만 그뿐이다.
신양천 벚꽃길을 걷는 사람은 그저 벚꽃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고 얼굴을 스치는 봄날의 바람을 여유롭게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는 아스팔트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도, 사람들의 왁자한 북적임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 위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신양천 벚꽃길에서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운곡면사무소 인근 도로변을 제외하면 신양천 벚꽃길에는 시골 카페 ‘앵화당’(櫻花堂)이 있을 뿐이다. 앵화당이라는 이름은 벚꽃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인데, 카페의 모습이 한적한 신양천 벚꽃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수 만든 전통차·디저트 인기

앵화당의 소박한 시골 한옥과 정원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럽다. 시골 카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서울살이의 지난함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젊은 사장님의 선한 미소만큼이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제 앵화당 창가 자리에 앉아 벚꽃 핀 신양천을 바라보는 시간은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었다.
사장님이 손수 재료를 구해 만든 음료도 훌륭하지만 앵화당 시그니처 디저트인 ‘앵화당 곶감말이’와 ‘호두정과’, ‘딸기 찹쌀떡’은 정말 최고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양천 벚꽃길과 시골카페 앵화당에 다녀왔다. 신양천 벚꽃을 보러온 사람이라고는 카페 손님 십 여 명이 전부다. 그마저도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다.
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봄날의 고즈넉함을 바라보고 신양천 벚꽃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곳은 벚꽃 시즌 이외에도 참 좋다. 초록이 짙어지는 여름과 가을의 낙엽도 아름답고 눈 내린 겨울의 호젓함도 매력적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기에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청양의 벚꽃은 낮은 기온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늦게 핀다. 가장 늦게까지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4월 10일을 전후에 개화하기 시작해 15일 경 만개한다. 아직 제대로 벚꽃을 보지 못했다면 청양 신양천 벚꽃길에 가보는 것도 좋다. 나의 봄은 이곳 신양천 벚꽃길과 앵화당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제야 비로소 봄이고 한해가 시작된 것만 같다.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강의하며 지내는 강의집필노동자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시와 시론, 글쓰기와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낯선 세계의 흔적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