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꿈꾸는 이들과 지역 공동체를 사랑하는 동네 책방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바닷가 마을의 작지만 큰 책방

논골담길에서 내려다본 묵호 바다가 아름답다. ⓒ 잔잔하게
논골담길에서 내려다본 묵호 바다가 아름답다. ⓒ 잔잔하게

[미디어파인 칼럼= 조동범 시인의 공간 읽기] 강원도 동해시 묵호에 있는 바닷가 작은 책방 ‘잔잔하게’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곳인데 이곳에서 열린 북토크 사회자로 초대받았다. 묵호는 인근 강릉이나 속초, 삼척 등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동네다. 묵호를 품고 있는 동해시의 느낌과도 다르다. 그야말로 ‘잔잔하게’ 일렁이며 다가오는 작고 아늑한 동네다.

묵호라는 지명은 왠지 소박한 바닷가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묵호로 가는 길이 꽤 멀었지만, 묵호라는 이름만으로도 길 위의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릉을 거쳐 묵호까지 이어진 바닷길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잔잔하게’ 책방지기 중 한 사람인 채지형 작가와는 몇 해 전 한국여행작가협회 초청 강연에 갔다가 만났던 터라 반가운 마음도 앞섰다.

여행책방 ‘잔잔하게’는 채지형 여행 작가와 남편 조성중 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부부가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책방을 내고 삶의 거처를 옮긴 건 우연한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020년 가을 지역의 발한도서관에서 채지형 작가를 초대해 여행 글쓰기 강좌를 열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묵호행을 결심했다. 이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골담길에 머물게 되었고 그때 매일 아침 해돋이를 보며 묵호에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글쓰기 강의를 하기 위해 간 곳이 마음에 들 수는 있지만 삶의 거처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다른 질감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채지형 작가에게 묵호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묵호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책방 ‘잔잔하게’

여행책방 ‘잔잔하게’는 여행자와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다. ⓒ 잔잔하게
여행책방 ‘잔잔하게’는 여행자와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다. ⓒ 잔잔하게

잠깐이지만 묵호 거리와 바닷가를 걸어보니 채지형 작가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것 같았다. 채지형 작가는 묵호의 ‘잔잔함’이 다가왔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묵호의 거리와 바다는 고즈넉했고 평화로운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그것은 쇠락의 느낌과 다른 것이었다. 오래전 묵호는 크게 번성한 항구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묵호를 힘을 잃어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묵호는 분명 흥성거리는 항구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빛을 잃은 모습도 아니었다. 채지형 작가의 말처럼 잔잔함에 따뜻한 마음이 드는 동네였다. 책방 앞마을과 이어진 바다의 풍경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관광지의 모습과 달랐다. 마을과 이어진 바다의 모습에서 묵호 사람들의 삶이 느껴졌다. 채지형 작가가 느꼈다던 ‘잔잔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들 부부가 매일 아침 마주하는 해돋이와 바다 풍경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경험한 여행 작가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곳의 매력이 무엇일지도 생각해 봤다. 어떤 특별함이 여행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채지형 작가는 바다를 매일 보며 사는 삶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북토크에서 만난 주민들 역시 일상에서 바다를 누리는 것이 큰 기쁨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해를 보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나는 그저 부러운 마음만 들었다. 바다는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삶 역시 바다와 함께 일렁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책방 ‘잔잔하게’를 중심으로 이어가는 문화 공동체

묵호등대와 논골담길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 잔잔하게
묵호등대와 논골담길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 잔잔하게

‘잔잔하게’는 여행책을 주로 파는 작은 책방이다. 대도시 서점도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마당에 여행책을 파는 서점이라니 놀랍다. 채지형 작가 부부는 서점에서 글쓰기 강좌와 독서 모임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모임이 묵호의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주는 듯싶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매개로 따뜻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채지형 작가 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바닷가 마을에서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일 터다. 누군가는 바닷가 책방의 낭만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책방을 꾸릴 수는 없다. 이들의 그 어떤 선의와 열정이 떠올랐다.

채지형 작가는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생각도 많고 동해시의 긍정적 변화에 대한 고민도 많다고 했다. 책방 ‘잔잔하게’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하는 길을 모색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토크에서 만난 지역민들은 ‘잔잔하게’를 중심으로 멋진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나은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책방에 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의 마음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잔잔하게’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느슨한 듯 단단한 연대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잔잔하게’가 아니어도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을 테지만 주민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이끈 것이 여행책방 ‘잔잔하게’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잔잔하게’가 더욱 소중한 이유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책과 글과 사람들의 이야기

책방 ‘잔잔하게’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길을 모색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 잔잔하게
책방 ‘잔잔하게’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길을 모색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 잔잔하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밤이 깊어져 갔다. 여행책방 ‘잔잔하게’ 작은 공간에 모인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았다. 책방에 모인 이들은 스무 명 정도지만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품고 있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충분히 짐작되었다. 함께 모여 책과 글을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법이다.

묵호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건 사람의 마음을 더했을 때이다. 오래도록 묵호 바다가 생각날 것 같다. 채지형 작가는 묵호가 다정한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내 마음에 잔잔하게 밀려오던 여행책방 ‘잔잔하게’가 있다. 묵호는 이제 ‘잔잔하게’에서 보낸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잔잔하게, 잔잔하게 일렁이던 책과 글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을 것만 같다.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강의하며 지내는 강의집필노동자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시와 시론, 글쓰기와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낯선 세계의 흔적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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