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문 연 강릉 빈티지 바(bar)
-세월을 견딘 공간의 감수성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

강릉 교동에 위치한 ‘바그다드 카페’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그리움 같은 곳이다. ⓒ조동범
강릉 교동에 위치한 ‘바그다드 카페’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그리움 같은 곳이다. ⓒ조동범

[미디어파인 칼럼= 조동범 시인의 공간 읽기]  바다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도시들이 있다. 부산이나 인천, 제주 등의 도시는 언제나 바다와 함께 떠오르는 곳이다. 강릉 역시 바다를 떠올릴 때면 늘 생각나는 도시다. 그중에서 강릉은 그리움처럼 출렁이는 바다의 이미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인근 속초와 양양 해변이 핫플레이스가 되었지만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 해변과 바다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기호는 여전히 강릉이다. 깊고 푸른 동해를 따라 여러 도시가 연이어 자리 잡고 있지만 동해의 해변은 모두 강릉으로 수렴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 만큼 강릉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도시인데, 강릉에서의 추억 한 조각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강릉 바다는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다른 질감의 추억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나 기억과는 다른, 애틋함과 그리움, 설렘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며 와 닿는다. 요즘 강릉은 커피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지만, 강릉에는 단순히 커피나 바다와 같은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잊히지 않는 그리움처럼 강릉이라는 매혹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바그다드 카페’, 강릉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공간

담쟁이로 뒤덮인 문 안쪽으로 ‘바그다드 카페’의 아늑한 실내가 보인다. ⓒ조동범
담쟁이로 뒤덮인 문 안쪽으로 ‘바그다드 카페’의 아늑한 실내가 보인다. ⓒ조동범

그런데 내게 강릉은 또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도시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강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다도 커피도 산도 아니다.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술집 한 곳이 강릉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강릉역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도로변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가 바로 그곳이다. 세월이 멈춘 듯한 모습이 추억처럼 애틋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세월이 멈춘 듯한 모습이 추억처럼 애틋하고 고요하게 펼쳐져 있다. 비가 오는 날의 모습과 저물녘의 서로 다른 모습 속에서도 한결같은 아름다움으로 서 있다. 무심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랜 친구의 눈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카페라는 이름과 달리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이다. 그곳은 내게 강릉의 모든 아름다움과도 같다. 핫플레이스는 아니지만 한 번 ‘바그다드 카페’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동네 주민들이나 단골들만 알고 찾는 곳이기에 나만의 비밀 공간 같은 느낌도 든다. 누군가 인터넷에 ‘빈티지 올드 스쿨’이라거나 클래식 바(bar)라고 ‘바그다드 카페’를 설명한 것처럼, 낡은 듯 세월을 견딘 공간이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하지만 ‘빈티지 올드 스쿨’이나 클래식 바(bar)라는 설명만으로 ‘바그다드 카페’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는 존재들이 있다. 시간과 함께 늙고 낡아가면서도 고유의 매력을 간직한 채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으로 남는 그런 것들 말이다. 특히 그것이 특정한 공간인 경우, 공간과 함께 세월을 견딘 시간과 추억으로 인해 그 자체가 우리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 상실되는 아픔이기도 하다.

2002년 문 연 뒤 지금까지 같은 자리 지킨 강릉 터줏대감

흐린 저녁을 환하게 밝힌 ‘바그다드 카페’ 간판이 애틋함을 자아낸다. ⓒ조동범
흐린 저녁을 환하게 밝힌 ‘바그다드 카페’ 간판이 애틋함을 자아낸다. ⓒ조동범

추억은 공간을 매개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무 공간이나 추억의 조각이 되지는 않는다. 공간에 특별한 시간과 사건이 덧씌워지거나 공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경우라야 추억의 힘이 커지는 법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인데,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린다. 사막의 황량함과 무미건조한 일상이 삶의 환희로 뒤바뀌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강릉 ‘바그다드 카페’는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처럼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2002년 지금 장소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바친 심명숙 대표의 삶에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어린 시절에 강릉으로 이주한 이래 대학 시절을 포함한 이후의 삶 모두를 같은 곳에서 이어가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어제인 듯 펼쳐진 강릉에서의 삶은 지루함과는 다른, 가슴 먹먹한 평온함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누구나 그리움처럼 마음속에 담아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바그다드 카페’가 그런 곳이다. 머나 먼 동쪽 끝 바닷가 도시에 있기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마음에 담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그런 마음이 더 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곳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바그다드 카페’는 어떤 면에서는 평범함이 가장 큰 매력인 곳이기도 하다.

‘바그다드 카페’, 강릉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공간

오래된 것들의 편안함에서 비롯된 정서적 충만함은 ‘바그다드 카페’의 매력이다. ⓒ조동범
오래된 것들의 편안함에서 비롯된 정서적 충만함은 ‘바그다드 카페’의 매력이다. ⓒ조동범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곳인 만큼 메뉴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손으로 쓴 메뉴판에 적힌 과일, 마른안주, 오징어볶음, 계란말이, 두부김치 등 낯익은 안주가 정겹다. 그리고 맥주와 위스키는 물론이고 소주까지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근사함과 거리가 먼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꾸미지 않은 편안함은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내게 강릉은 ‘바그다드 카페’의 도시로 기억된다. 담쟁이로 뒤덮인 1층 건물과 비밀스런 느낌의 간판과 철문. 그리고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전등의 따스한 빛과 골목. 밖에서 바라본 ‘바그다드 카페’는 가슴 떨리는 이야기를 감춘 듯 신비한 모습이다. 그것은 마치 삶의 덧없음 속에서 발견한 애틋함과도 같다. 그리하여 ‘바그다드 카페’는 작은 도시의 한적함을 배경으로 완벽한 어느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바그다드 카페’의 이런 모습은 실내로 들어서도 변함없이 전개된다.

문을 여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오래된 것들의 편안함과 정서적 충만함의 감흥은 이내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모습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지만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은 서로 닮아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눅진한 삶의 매혹이 가득한 그곳에 언제 다시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강릉의 평화로운 시간 속에 언제나 ‘바그다드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언제나 그리운, 내 사랑 강릉 ‘바그다드 카페’.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강의하며 지내는 강의집필노동자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시와 시론, 글쓰기와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낯선 세계의 흔적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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