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여행자 카페
-비건 옵션 가능한 전국구 짜이 맛집이자 비건 식당

[미디어파인 칼럼= 조동범 시인의 공간 읽기] 특별한 냄새로 기억되는 공간과 시간이 있다. 비 온 뒤에 올라오는 흙냄새가 그러하고 포구나 해변의 바다 냄새가 그러하다. 냄새는 공간과 시간에 특별함을 부여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 이국의 낯선 여행지도 그렇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섰을 때 후각을 자극하며 다가오는 냄새는 오래도록 여행지에 대한 인상으로 남기 마련이다. 어떤 때에는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먹은 것보다 냄새가 더 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여행의 추억은 냄새의 아련함으로 남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또한 냄새는 여행지의 바람이나 햇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럴 때면 냄새는 후각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청각, 촉각의 감각인 듯싶기도 하다. 적도 인근 어느 나라 공항에서 맞닥뜨린 냄새가 기억난다. 한낮의 뜨거움과 함께 몰려온 냄새는 이곳이 낯선 이국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장소의 첫인상을 만드는 것이 냄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별한 차(茶)를 파는 강릉 원도심 짜이 카페 <명주상회>

물론 어떤 장소의 분위기는 시각과 청각, 공간감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 가운데 이미지가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음식 본연의 느낌을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냄새는 바로 이런 부족함을 채우며 공간의 감각을 완성한다. 냄새는 단순히 후각을 의미한다기보다 어떤 존재나 대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냄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조금은 특별한 차(茶)를 파는 곳이다. 그곳은 팔각, 산초, 정향, 카다멈, 월계수 같은 낯선 냄새로 기억되는데, 이런 낯선 냄새는 이국과 여행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릉 원도심에 있는 짜이 카페 <명주상회>가 바로 그곳이다.
마쌀라 짜이로 유명한 강릉 <명주상회>는 냄새로 공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곳이다. 마쌀라 짜이 이외에 라씨, 콤부차 등 이국의 분위기를 흠씬 느낄 수 있는 메뉴도 판다. 커피는 물론이고 ‘짜이 플레이트’와 같은 식사도 된다. 언제부턴가 강릉은 커피의 도시로 알려졌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카페도 많고 안목해변은 우리나라의 커피를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강릉에 가면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나는 강릉에 짜이를 파는 아름다운 공간 <명주상회>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명주상회, 강릉 원도심을 걷고 느끼는 시간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난 짜이 맛집이지만 이것만으로 <명주상회>의 매력을 말할 수는 없다. <명주상회>는 짜이 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 카페를 표방한 만큼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명주상회>의 더 큰 매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인문학 강의가 열리기도 하는데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그런 만큼 <명주상회>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듣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작은 공간의 힘과 아름다움이 빛난다. 강의나 모임이 없는 날에는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다. 햇살과 음악이 전부인 곳에서 느끼는 이국의 차와 낯선 향이 참 좋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강릉 원도심을 걷고 느끼는 시간은 바닷가 도시 강릉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관광지의 번잡함을 벗어나 골목길을 걷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물론 원주민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것은 <명주상회>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이국의 낯선 감각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

<명주상회> 자체의 공간은 크지 않지만, 그곳을 둘러싼 원도심 전체가 <명주상회>처럼 다가온다. 나는 <명주상회>가 낯선 이국만을 지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주상회>는 강릉의 마음을 담고 있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명주상회>에는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강릉의 마음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국의 낯선 감각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은 지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분과 떨림, 설렘과 같은 마음이 들게 한다. 언젠가 돌아와야 할 일상이고, 그런 일상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다의 도시 강릉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멋진 여행지다. 강릉 역시 누군가에게 일상으로서 삶의 거처겠지만 강릉이 가지고 있는 여행의 감각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런 강릉에서 낯선 이국의 모습을 마주한다면 여행의 감각은 훨씬 커질 것이다. 이국의 차를 마시고 그곳의 냄새를 온몸으로 감각할 때, 일상의 고단함으로부터 잠시나마 놓일 수도 있다. 바닷가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짜이를 마시며 강릉 원도심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요하고 느린, 행복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명주상회>는 소박한 시간과 마음이 놓인, 햇살 한 줌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조동범(시인, 인문학자)]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강의하며 지내는 강의집필노동자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시와 시론, 글쓰기와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낯선 세계의 흔적을 찾아 떠도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