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무거움을 내려두자 가벼움이 찾아왔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무거움은 바람을 이길 수 있고
가벼움은 바람을 탈 수 있다.
한때는 한 곳에만 박혀있는 나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를 데리고 다니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나무가 내게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너는 한곳에만 살 수 있는 힘은 없어.
한 곳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35억 년 전 화석에 갇힌 세균을
우리가 만날 수 있어.
너와 나의 조상인지도 몰라.

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나의 일부라고 여기던 책을 내다 버렸다.
수백 권의 책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그들의 이야기
깨달은 자의 이야기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
사랑과 배반
전쟁과 평화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
아직도 누군가를 믿음으로 인도하는 신화
죄와 벌
살인과 용서
그때는 맞았으나 이제는 틀린
이야기들을 내다 버렸다.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작가의 밤
무도회장에서 눈이 맞는 순간의 떨림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나치 앞에 떨고 있는 엄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

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나를 보내지마 [김철홍 칼럼]

책을 읽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되어 큰소리 치는 사람들
뇌물을 받고 자리를 파는 권력자의 아내
아파트 가격이 올라 따라 오르는 신분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도시에서
불멸하고자 찾아가는 교회
책은 무거웠다.
무거움을 내다 버리자 가벼움이 느껴졌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책을 버리게 한 것은 책 자신인지 모른다.
하느님의 뜻을 널리 알리고자 만든 인쇄기가
교회로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렸듯이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저 책을 저렇게 쉽게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른은 권위로 무거울 것이다.

책들은 말한다.
나를 보내지 마.

김철홍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김철홍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김철홍 대표]
현)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전 KCB대표이사
전 서울신문 ESG위원회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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