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칼럼=박미주 교수의 세상사는 이야기]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에 있어 우리가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일에 있어서의 규칙인 것이다. 규칙이라는 것은 우리가 서로 그렇게 하기로 한 서로의 약속이기도 하고 어느 조직에 있어서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 규칙은 서로를 보호하는 질서가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신념에 따라서는 어떻게 해석이 되느냐에 따라 해쳐진다는 느낌을 낳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의 신념은 자신만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만, 상대가 정해진다면 서로가 지켜야 하는 질서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객관성을 필요로 한다.
하여, 개인일 때와 함께하는 대상이 있는 사안이라면 우리는 최소한의 도덕적인 신념의 질서를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들이 관계를 지어 만들어지는 조직이라는 단체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을 받았을 때 그들의 참여 동기는 활동이라는 테두리 안에 존중이라는 무게를 담게 되면 위에서 말했던 질서가 도덕적인 신념을 발휘 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그 존중을 받는다는 감정이 없을 때는 사실 기본적인 질서 마저도 있으나 마나인 규칙이 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의 폭발이 잦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신념의 규칙을 아는 사람들은 일단, 오해가 되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의 움직임 순서를 알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문제의 실오라기를 인격까지 언급이 될 상황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자신의 수준을 낮출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과정과 처한 환경을 통해 자연스레 고착화된 신념의 움직임으로 인해 간혹, 사적 관계의 친분정도에서 객관성을 잃고 오류를 빚기도 한다.
그것은 아무리 주변에서 도움이 될 만한 옳은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고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 첨언을 해주려 해도 “아닌데,,,” 라는 자신들과 친분 관계에서의 알고 있는 강한 그들의 신념은 건강한 경청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계산 없이 챙겨주는 마음을 전달하더라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객관성을 오히려 “나쁘게 본다.” 는 생각으로 선을 그어 본의 아닌 이간질이 되어 단절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무엇이 정의롭고 부당한지에 대한 판단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건강한 신념은 우리의 도덕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모두에게 이로운 행동을 유도해 조직 또는 관계에서 윤리적인 의사 결정시 신념의 역할과 도덕적 판단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으로 질적 가치가 만들어 진다.
누군가가 내게 첨언을 해준다면 그는 우리보다 잘나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참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도움이 될 것이다.“ 는 생각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면서 몇 번이나 할까 말까 망설이다 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옳고 맞는 소리보다는 듣기 좋은 말에 더 마음을 열고 관계형성의 속도가 빨라지고 듣기 편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코로나19 3년여 동안 마스크가 불편하고 싫지만 정부의 권고였고, 타인에게 피해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의무였던 것처럼 필요한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것인 것이다.
결국, 사람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건강한 신념은 관계보다는 공동체의식이기도 하다.

[박미주 교수(작사가. 김포대 특임교수)]
한국 에니어그램 경영협회 부대표
박미주의 마음연구소 소장
대중가요 작사가
2014년 서울 경제 100인의 CEO 선정
김포대학교 특임교수(태권도융합과)
파주민보, 미디어파인 칼럼리스트 外
[학력사항]
서강대학교 경영학사
중앙대학교 창업 대학원 기후경제학 석사
[저서]
공감세상ㆍ생각으로 피어나다
에니어그램 인생 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