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미디어파인=김철홍의 걸어서 봄까지] 12.3 비상계엄부터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정의와 공정을 천명했던 자는 현실과 유리된 정신세계에서 미디어를 통해 손을 흔들었다.

사전 투표를 마친 나는 이른 아침 투표를 마친 친구를 만나 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돈다. 길은 한적하고 오솔길이 숲속에서 8km가 이어졌다. 둘레길에서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싸리꽃, 밤나무, 리기다소나무, 유물이 된 초소, 참나무 등이 어우러져 새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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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패턴은 시내가 아니라 숲속이다. 도장골에 들어 흙을 뒤집고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수확한다. 대공원 나들이는 낯설다. 인간의 행동은 패턴 안에서 이루어진다. 도장골에 들면 도시가 사라지고, 도시에 남으면 도장골이 시야에 없다. 각자는 본 것 위주로 말하게 되므로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듣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거부하게 된다.

조나단 보로프스키, 노래하는 사람
조나단 보로프스키, 노래하는 사람

상해 박물관 마당에서 봤던 하지메 소라야마(Hajime Sorayama)의 작품이 연상된다.

그의 대표작 '섹시 로봇(Sexy Robot)' 시리즈는 명성이 높다. 여성의 곡선미와 로봇의 금속성을 결합하여, 미래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이미지를 창조한다.

이 로봇은 노래를 한다.

세자르 발다치니, 빌르타뇌즈의 여인상
세자르 발다치니, 빌르타뇌즈의 여인상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안드로진과 수레바퀴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안드로진과 수레바퀴
백남준, 다다익선
백남준, 다다익선

이 작품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비디오 조각으로, 1,003개의 브라운관 TV를 쌓아 올려 만든 높이 약 18.5미터의 탑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백남준의 작품은 전기와 반도체의 역사 안에서 봐야 의미가 보인다. 나는 요즘 AI(인공지능)의 흐름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

와엘 샤키(1971)의 <드라마 1882>(2024)는 19세기 말 이집트에서 발생한 우라비 혁명을 조명한다. 이집트의 통치자 이스마일은 재임 시기에 프랑스와 수에즈 운하를 공동 건설했으나, 재정 적자가 급증하자 운하의 지분 전체를 영국에 매각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와 영국이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우라비 대령이 이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영국이 이러한 움직임을 무력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집트는 1956년까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와엘 샤키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혼합해 우라비 혁명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집트인과 외국인 사이의 갈등은 당나귀 주인과 몰타인 사이의 다툼을 통해 재구성해 보여준다. 작가는 300여 명이 사망한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진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우라비 혁명에 개입하기 위해 외국인이 유도한 것인지를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안한다.

이는 서구 역사가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온 우라비 혁명사가 과연 객관적인 것인지, 제국주의 시기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1882>는 8장으로 구성된 오페라 형식의 영상 작품이다. 회화이자 조각 혹은 설치미술이기도 한 무대의 배경은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 등 혁명이 전개된 여러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프랑스나 영국 같은 서구 열강에 의해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당했던 제국주의 시기 이집트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그간 회화, 조각, 설치, 영상, 공연 등 복합적인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의 작품 경향을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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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1층에서 나는 봤다.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를.
저음 뮤지컬 대사, 배우들의 느린 동작, 단조로운 무대장치 그리고 큰 울림
인간의 변하지 않는 속성 중 하나는 이기려고 하는 욕망이다.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그 욕망은 살인을 낳고 살인은 집단 간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전쟁은 인류가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앞으로도 전쟁이 이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근현대사는 전쟁으로 시작해서 독재를 거쳐 민주화되었으나 윤 아무개라는 작자가 다시 독재의 시대로 되돌리려 했다. 국민은 저항했고 그의 시도는 다행히 가까스로 벼랑 끝에서 멈췄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권력자 주변인들의 행동은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만들었다. 오늘 투표 결과를 보면서 어떻게 비상계엄 세력에 대한 지지율이 저토록 많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립적이다.

둘레길을 돌고 대공원 입구에서 막걸리와 콩국수를 먹는다. 볕은 따사롭고 바람이 불어 덮지 않았다. 이런 날이 많으면 좋겠다. 다양성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가 다툼에서 폭력으로 불붙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철홍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김철홍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김철홍 대표]
현)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전 KCB대표이사
전 서울신문 ESG위원회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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