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조영곤의 경제 읽기] 허영인 SPC그룹 회장. SPC를 세계적인 제빵기업으로 성장시킨 승부사다. 허 회장이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지, 시선 집중이다.
SPC그룹. 창립 77주년이다. 1945년 10월 초당 허창성(1914~2003년) 창업주가 황해도 옹진군에 빵집 '상미당'을 차린 게 출발이다. 1970년 삼립호빵, 1976년 보름달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대표 제빵기업으로 우뚝섰다.
허창성 회장은 1977년 주력인 삼립식품을 장남 허영선에게, 차남 허영인에게는 샤니의 경영권을 물려줬다.
장남 허영선이 이끈 삼립식품은 산업 전반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경영 위기를 문어발식 확장 경영으로 극복하려는 자충수까지 뒀다. 결과는 법정관리.
반면 경기도 성남 소재 영세규모의 공장 하나뿐인 샤니를 물려 받은 허영인 회장은 식품분야에 집중하며 승승장구했다. 배스킨라빈스(비알코리아), 파리크라상(외식), 파리바게뜨 등의 브랜드가 중심이다.
허영인 회장은 삼립식품까지 인수하며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글로벌 매장 약 7000개, 매출 7조원. 승부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뚝심과 집중력은 자타공인이다.
그림자
SPC는 선제적인 시장 공략으로 현재의 위치를 다졌다. 2000년대 '해피포인트카드'가 대표적이다. 또 2016년 간편결제서비스 도입과 브랜드별 캐릭터 이미지 개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 포켓몬빵, 케로로빵 등 캐릭터 빵으로 소위 대박을 쳤다.
모든 게 앞서 있던 SPC에게 딱 하나 과거에 머물던 게 있다. 바로 안전이다. 허영인 회장이 간과했던 것일까. 아니면 허 회장의 안전 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일까.
SPC그룹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20대 근로자가 지난달 작업 중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혼합기 끼임 방호 장치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없었다는 사실에 공분을 일으켰다.
인재(人災)는 한 번의 실수였을까. 아쉽지만 아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SPC그룹 계열사 4곳(파리크라상, 피비파트너즈, 비알코리아, SPL)의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발생한 산업재해는 총 581건이다. 이 중 SPL 근로자 사망을 불러온 ‘끼임’ 사고도 54건에 달했다.
연이은 끼임 사고 발생에도 SPC그룹은 안전장치를 구축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책을 내놓는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거셌다.
허영인 회장은 사망 사고 발생 6일 만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3년간 1000억원의 안전관리시스템 투자가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태도 논란을 일으키며 분노를 키웠다.
SPC의 행보도 상식을 벗어났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공장이 사고 다음날 재가동에 들어갔다가 중단했다. 또 고용노동부 감독관의 서류를 불법 촬영하는 이른바 '과잉 충성(?) 사건까지 발생했다.
허 회장부터 집단(기업)까지, 진정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불매운동. 진정성에 분노한 이들이 움직였다. 삼양식품이 농심에게 라면 1위를 내줬던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일본계 화장품 업체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실적 일등공신 포켓몬빵 매출(대형마트 기준)이 10% 가까이 감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불매운동 이후 가맹점 평균 매출이 20~30% 줄었다.
엎친데 덮친격이다.
검찰이 지난 8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와 허영인 회장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자녀들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에 부당하게 이익을 몰아준 혐의다.
배암투명
허영인 회장과 SPC그룹에게 배임투명(背暗投明-그릇된 길을 버리고 바른길로 들어섬)의 자세가 요구된다.
최근 행보는 다행스럽다. 앞서 보이지 않았던 진정성이 느껴진다. 대중과는 온도차가 있겠지만 썩은 살을 도려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29일 SPC에 따르면 '안전경영위원회'는 최근 사고가 발생한 SPL과 파리크라상, 샤니 등 생산시설 현장을 찾아 안전 진단 및 개선 현황을 점검했다.
정갑영 안전경영위원회 위원장과 조현욱 위원은 지난 22일 경기도 평택 SPL을 방문해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안전 진단 현황을 브리핑 받고, 개선 조치가 완료된 사항 등을 직접 확인했다. 또 노동조합과 만나 현장의 목소리와 건의사항을 청취했다.
현장 근무 직원들은 안전보건에 대한 의견은 물론, 근무 여건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안했고, 안전경영위원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렴해 회사에 권고하기로 했다.
정갑영 안전경영위원장은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반드시 문제점을 고치고 개선하겠다는 회사 측의 확고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며 “산업 안전뿐만 아니라 노동환경과 사회적책임 분야까지 회사 전반에 대해 면밀히 살피고, 변화와 개선을 이끌어내 SPC가 고객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PC는 안전관리 강화 대책에 따라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전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 진단을 실시해 현재 28개 생산시설 중 24개 사업장에 대한 진단을 완료했다. 안전경영위원회는 오는 11월 말 진단이 완료되면 결과를 검토해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일부 내용이다. 그의 일성이 허언이 아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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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앤토크 총괄 프로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