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김철홍의 생각에 관한 생각] 뇌로부터 감각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미각은 뇌로부터 가장 가깝다.
촉각은 두 팔을 벌려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있다.
후각은 두 팔을 벌려 원을 그리면 그 밖 어느 공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청각은 피부 경계면 밖으로부터 소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꽤 멀리까지 들을 수 있다.
시각은 무한에 가까울 수 있다. 지구상의 물체는 지구의 곡률과 대기 효과 때문에 볼 수 있는 거리는 제한된다. 눈높이가 1.7m인 사람이 수평선/지평선을 볼 수 있는 거리는 약 4.64km이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다.
매우 밝은 빛은 어두운 밤에 깜빡이는 촛불의 경우 약 48km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별과 같은 천체는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지만, 그곳에서 오는 빛이 충분하다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시각의 도달 거리가 광원으로부터 오는 빛이 존재하는 한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25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우리은하 너머의 안드로메다은하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상상력은 감각이 아니다. 뇌가 만들어 내는 모형이다.
“오감이 미치지 않는 정신의 시공간 여행이다. 사물이 개인공간 안(팔을 벌려 360도 회전했을 때 내부 공간)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오감으로 경험한다. 그런데 사물이 도파민이 관장하는 외부공간을 향해 점점 멀어지면 촉수처럼 연결되어 있던 오감은 하나씩 떨어진다. 가장 먼저 잃는 감각은 미각, 그다음은 촉각이다. 사물이 더 멀어지면 후각을 잃고,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결국 보이지도 않게 된다.
이때부터 얘기가 재미있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인지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해 세상의 모형을 만든다. 모형을 세우는 작업은 설계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만 포함된다.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된다. 단순한 모형은 세상을 더 쉽게 파악하게 해준다. 우리가 생활하는 동안 뇌는 알아서 이 작업을 수행하고 새롭게 입수되는 정보를 참고해 모형을 업데이트한다.
우리는 이 모형을 통해서 경험을 추론하고 보편타당한 규칙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전에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페라리를 처음 봤을 때 이 금속 덩어리의 용도가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이유다. 샅샅이 뜯어보거나 특별한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가 자동차인 것을 알아보는 게 뭐 별일인가 싶은가? 모형 구축 기능은 우주적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하운동뿐만 아니라 행성과 별, 은하의 운동까지 설명하지 않는가.
모형은 많은 선택지 가운데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 특히 유용하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체험해 보고 가장 나은 것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장 워싱턴 DC에서 뉴욕으로 가야 한다면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기차를 탈 수도, 버스를 탈 수도,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마음을 정하기에 앞서 우리는 각 옵션을 택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고 어떤 교통수단이 가장 빠르고, 가장 편하고, 가장 편리할까를 고민한다. 그런 다음 상상 속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의 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을 '정신 시간여행 mental time travel‘이라고 한다.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미래 상황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정신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를 토대로 내게 필요한 자원, 즉 넓은 좌석 저렴한 표, 혹은 짧은 이동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정신 시간여행은 도파민 시스템이 보유한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도파민 회로는 이 기전을 통해 마치 실제로 그곳에 가 있는 것처럼 미래를 체험하게 한다. 그런데 정신 시간여행을 위해서는 모형이 필요하다. 정신 시간여행은 기본적으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예측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식기세척기를 새로 사면 내 일상에서 무엇이 달라질까? 우주비행사가 달에 갈 때 직면하게 될 문제는 무엇일까? 빨간불에 길을 건너면 어떻게 될까? 뇌 입장에서는 모든 선택의 상황이 그저 모형을 활용해 처리해야 하는 도파민의 일거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햄버거집에서 메뉴를 고르는 꼬마의 고민과 전쟁 참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대통령의 고민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간 생의 모든 다음 단계가 정신 시간여행에 달린 것이다.”
감각이 상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작용 덕분이다. 뇌 안의 도파민 욕망 회로가 미래를 모형화하게 한다. 열정, 기대, 희망, 꿈, 목표 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도파민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 도파민(Dopamine)이란 도대체 뭔가?
도파민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다.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네 종류의 원소로만 이뤄진 조그만 분자다. 이 화학물질은 팔을 끝까지 뻗어도 닿지 못하는 저 너머를 꿈꾸게 한다. 나아가 우물 안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정복하라고 부추기는 물질이다. 인간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함을 느끼게 만드는 욕심쟁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이든 한번 맛 들이기 시작하면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이 화학물질은 우리를 쉼 없이 꼬드긴다.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며, 동기이자 보상인 이 화학물질의 이름이 ‘도파민 dopamine’이다.
도파민 형 인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욕망하고 갈구하며, 남보다 더 잘 중독되고, 성취하는 것에서 인생의 목표를 찾는다. “진보주의 믿음은 삶을 더 낫게 하자는 데 방점이 있다면 보수주의적 믿음은 삶을 더 행복하게 하자는데 있다.”고 한다. 도파민 형 인간들에게 휘둘리며 살지는 말자.

[김철홍 대표]
현)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전 KCB대표이사
전 서울신문 ESG위원회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