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김철홍의 생각에 관한 생각] 김근태기념도서관 옥상정원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면 의정부부터 방학동까지 능선이 걸어간다. 이 능선은 너무 멋이 있어 망월사에서 우이동까지 자주 동행한다. 능선에 들어가면 능선을 볼 수 없고, 능선을 한눈에 보려면 능선에서 나와야 한다.
도서관 옥상에서 보는 이 능선은 아름다워서 사진을 자주 찍는다. 사진은 언제 촬영하느냐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눈이 덮였을 때와 해질 녘이 가장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다른 아름다움이다. 오브제는 몸이 언제 어디서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미시적으로 보면 ‘원자’이거나 거시적으로 보면 ‘능선’이라는 개념 안에 있다.


주중에는 도서관에서 주로 일상을 보내고 주말이면 농장에 간다. 농장은 영월 도장골에 있다. 도장골에는 전기가 없고 수도가 없다. 발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린다. 펌핑한 물은 탱크에 보관해 식수나 세면을 위한 용도로 쓴다. 작은형이 영월 도장골로 귀농한 이후 농막을 설치하고 지하수를 파, 오미자 하우스를 설치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에 이웃을 한 분 알게 되었다. 그분도 귀농한 분이다. 그분은 건축에 관한 지식과 구조, 설비 등의 능력이 있어 집을 손수 지었다.
알음알음 알게 된 후 이분은 작은형 농막에 부엌을 이어 붙여 만들어 주었다. 재능기부를 한 것이다. 한 번은 이분이 농막에 놀러 와 몇 가지를 손봐주고 갔다가 그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했더니, 집사람이 이왕 해 줄 거면 부엌도 만들어 주라고 했단다. 선량한 분들이다.
그래서 작은형은 농막에 부엌이 생겼다. 부엌을 지어준 뒤 이분 말이 자신이 10톤짜리 물탱크가 있는데 자신은 쓸모가 없다. 가져다줄 수 있으니 쓸 거냐고 형에게 물었다. 형은 5톤짜리 물탱크가 있어 굳이 쓸 필요는 없었으나 혹시 몰라 그러라고 승낙했다. 선의를 베푼 사람이 또 다른 선의를 베푸는 데 거절하기란 참 어렵다.
10톤짜리 물통은 그런 이유로 도장골에 들어왔다. 자리를 잡을 때 바닥 면을 평평하게 닭은 뒤 물통을 놓아야 했다. 그러나, 물통의 성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형은 바닥에 수평을 잡기 위해 돌을 괴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몇 번의 해가 지나간 후 어느 여름 가뭄이 닥쳤다. 형은 오미자밭에 물을 주기 위해 10톤 가득 물을 끌어 올려 저장했다. 가뭄은 이어졌고 몇 번 이 과정을 되풀이하다 물통이 터졌다. 플라스틱 물통이 깨지면서 10톤 물량이 한순간 쏟아졌다. 폭탄이었다. 물 폭탄. 다행히 사람이 주변에 있지는 않았다.
깨진 물통의 파편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사람의 힘으로 옮길 수 없었다. 작은형은 나중에 포크레인을 불러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형은 마음은 부자지만 재력은 가난하다. 나는 포크레인을 한 번 부르면 50만 원이 든다고 알고 있다. 뒤처리는 바쁜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 1년이 가고 2년이 갔다. 어느 봄 땅을 팔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물통 파편을 치워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방법에서는 일치가 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직접 해체해서 트럭에 실어 버리자고 우겼다. 작은형은 착하고 성질이 유순하다. 나는 그라인더 날을 사와 작은형에게 해체하자고 했다. 그날 작은형은 고추 모를 심느라 피곤한 상태였다. 동생 말이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못 이기고 그라인더를 잡았다.
사단이 났다. 형이 그라인더로 물통을 해체하다 옷이 날에 감겨버렸다. 그라인더는 계속 돌고 나는 옆에서 당황해 손이 그라인더로 가지 않았다. 통제되지 않은 그라인더는 방향을 알 수 없이 퉁퉁 튀다가 작은형 왼팔을 세로로 그었다. 피가 났다. 간신히 코드를 뽑고 형은 오른손으로 옷을 이용해 지압하면서 나는 운전을 했다. 시멘트 포장 농로를 시속 60km로 달렸다. 왜 형에게 해체 작업을 하자고 우겼는지 후회가 되었다. 걱정이 되고 차의 속력은 올려야 하고 작은형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30분을 운전해 제천 명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동맥을 비껴갔다. 25바늘도 넘게 수술을 했다.
깨진 물통 파편은 그 후로도 3년을 그 자리에서 내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주말에 도장골에 가서 그 파편을 보면 돈을 들여서라도 빨리 해체해 없애버리고 싶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어제 친구와 상추 씨앗을 뿌리기 위해 도장골에 갔다. 작은형은 아로니아 나무를 뽑은 자리에 다래나무를 심고 4각 파이프로 틀을 설치했다. 그것을 구경하러 가던 중 친구에게 물통 파편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도끼로 찍으면 해체된다고 했다. 설마? 반신반의하다가 나는 달려가 도끼를 들고 왔다. 핀란드산 피스카스 도끼다. 친구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동생 회사에서 현장 노동일을 10년 했다.
봄이 왔고 작은형, 나, 친구는 어제 도장골 묶음 때를 청소했다. 트럭 3대 분량을 분리 수거했다. 트럭 한 대 분량은 35만 원을 들여 버렸다. 선의에 선의로 도장골에 들어온 물통이 물 폭탄으로 터지는 무기가 되고 비용이 되어 도장골을 나갔다. 물통 사건이 났을 때 나는 작은형의 한 달 치 급여를 보존해 드렸다. 실존주의 문학은 이런 일을 부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선조들은 새옹지마, 호사다마라고 할만하다.
삶에는 이런 일이 너무 많다. 도봉산 능선이 누가 어디서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어떤 인연은 좋은 것으로 시작해 나쁜 인연으로 변해가고, 나쁜 인연이었지만 좋은 결과로 끝나기도 한다.
친구는 쓰레기를 버리면서 지방정부의 역할론을 이야기한다. 농자재 쓰레기는 지방정부가 무료로 수거해 가야 한다. 노인분들이 농사일에 지치고 힘이 드는데 쓰레기를 돈까지 주면서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 몰래몰래 밤에 태우거나 묻는다. 태우다가 산불로 옮겨갈 수도 있다. 그러니 지방정부가 고용도 창출할 겸 쓰레기를 수거해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철홍 대표]
현) 세음세하태양광발전소 대표
전 KCB대표이사
전 서울신문 ESG위원회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