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이수정의 아름서재] 경계선은 어디에나 있다. 명시적인 형태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인종과 민족, 인간과 자연, 젠더와 섹스 사이, 그것은 놓여있다.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람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집 '경계선'(욘 A. 린드크비스트, 남명성 옮김, 문학동네, 2021)에서 이러한 선들은 허물어지거나 그 구획을 달리한다. 그의 소설에서 섹스와 젠더, 인간과 괴물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경계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임시교사’) 역시 흐릿해진다.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에 등장하는 흡혈귀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저자는 ‘마지막 처리’에서 살아있는 자와 망자 사이의 경계마저 허문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 중,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표제작 '경계선'과 독특한 메타 픽션적 실험을 보여주는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이다.

소설 ‘경계선’ 표지와 저자 욘 A. 린드크비스트
소설 ‘경계선’ 표지와 저자 욘 A. 린드크비스트

정체성의 경계를 허무는 사랑 - '경계선'

표제작 '경계선'의 티나는 항구 도시의 국경 세관에서 일한다. 국경이란 가장 확실한 경계선이며, 티나의 임무는 밀수꾼과 범죄자를 잡아내는 일이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의 불안, 공포, 수치심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수상한 남자 보레가 나타난다. 티나는 경계를 지키는 자이면서 동시에 그 경계에서 배제된 존재다. 티나에게 인생은 그저 묵묵히 견디는 무엇이다. 그녀는 늘 자신의 타자성을 느끼며 살아간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외모, 벼락을 맞아 생긴 흉터가 그녀를 괴롭힌다. 다른 여성과 다른 생식기 구조 탓에 임신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그녀의 콤플렉스다.

‘티나는 가시로 뒤덮인 자신만의 고치 속에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 출구가 없었다.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작은 우리 같았다. 안에서 앉을 수도, 서거나 누울 수도 없는 우리.’ -본문 21쪽 ‘

그녀에게는 자연만이 유일한 벗이자 해방구다. 어린 시절 벼락을 맞았던 장소의 소나무 밑동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을 얻는다. ‘어디선가 잠시 머물고, 그런 다음 다시 떠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보레에게 티나는 자신의 집에 딸린 오두막을 빌려준다. 티나는 보레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놀란다. 벼락을 맞은 경험, 꼬리뼈 부근의 흉터, 자연 속에서 느끼는 안전감까지. 곧 그들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 티나는 자신의 질에서 발기한 무엇인가가 돋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비로운 변화는 섹스와 젠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모든 경계를 허문다.

‘두 사람은 더는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그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두 몸이었다. 떨어져 움직이고 재결합하고, 서로의 파도 위에서 구르다가 마침내 티나의 몸속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내렸다.’ -본문 83쪽

티나는 마침내 자기 존재의 비밀을 밝혀낸다. 다름에서 오는 자괴감과 수치심, 소외감의 근원을. 흉터는 사고가 아니라 어린 시절 떼어낸 꼬리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증오하는 보레와 달리, 티나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소설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며, 티나와 보레의 생에 봄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텍스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 -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는 저자의 대표작이자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소설 '렛미인'의 외전이다. 이 소설에서 린드크비스트는 흥미로운 시도를 한다. 자신의 전작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그 영화의 결말에 대해 소설로 다시 '응답'하는 것이다. 영화 '렛미인'을 본 저자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는 바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주인공 오스카르가 결국 흡혈귀 소녀를 위한 또 다른 조력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나의 결말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는 원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이 다른 매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단순한 각색이 아닌 '재창조'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다시 창작으로 화답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소설의 범위나 경계를 초월하거나 아우르는 메타적 글쓰기다.

소설은 '수영장 뱀파이어 사건'의 마지막 목격자인 역무원 스테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는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카린과 결혼해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스테판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은 카린은 심장병을 겪지만 이겨낸다. 그러나 이번엔 스테판이 췌장암에 걸린다. 마지막 시간을 앞두고 스테판은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역에서 오스카르와 함께 있던 여자아이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피를 교환하는 중이었다. 그 장면은 그들이 미래에 펼쳐질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반을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그들 부부가 사라진다. 화자가 그들 집을 찾아갔을 때 발견한 사진 속에는 놀라운 광경이 담겨 있었다. 25년 전 사라진 오스카르와 이엘린이 어느 가족이 찍은 ‘셀카’의 배경에 우연히 찍혀 있었다. 오스카르와 이엘린의 모습은 사라질 때와 똑같았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만이 최신 유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 놀라운 점은 가족이 들고 있는 것이 아이폰이라는 사실이다.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꾼다. 가장 사랑했던 친구. 모든 것에 감사하네.’ 화자가 받은 카드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과연 그들은 오스카르와 이엘린을 만나 지나간 꿈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될까? 아니면 그들의 피식자로 전락할까? 시간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작품에서 모든 질문은 열린 결말로 남는다.

경계 너머의 새로운 만남

두 작품은 모두 사랑을 통한 경계 초월이라는 테마를 공유한다. '경계선'에서 티나와 보레의 사랑이 종족 간 경계를 허물듯이,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에서 스테판과 카린의 사랑은 나이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다. 소설집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임시교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언덕 위 마을'은 현실 인식의 경계를, '마지막 처리'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탐구한다. (‘마지막 처리’ 역시 저자의 소설 ‘언데드 다루는 법’의 외전이기도 하다) 등장인물은 모두 경계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예민함과 진실에 대한 감수성을 저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 역시 그들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가 아닌가.

'렛미인'이나 '언데드 다루는 법'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린드크비스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 역시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표제작 '경계선'은 영화화되어 2018년 칸느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했으니, 소설과 영상 언어의 차이를 느끼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이 소설집은 우리 안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연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따뜻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탐구하고 싶은 독자, 북유럽 문학의 독특한 감성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이수정 작가
이수정 작가

[이수정 작가]
이화여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했습니다.
서평가이자 영화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깊은 사유와 날카로운 통찰을 갖춘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