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박미주 교수의 세상사는 이야기] 격동의 봄이라고 했다.
광화문을 지나는데 그 넓은 차로를 다 막아놓고 차선 하나로만 차들이 다니려니 뻔한 교통 체증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광화문 도보로는 이미 각자의 진영을 상징하는 캠프 천막과 어수선한 음악 소리가 뒤섞여 지나는 사람도, 차로에서 보는 사람도 시선은 정해져 있다.
이 상황에도 틈새시장 역할이 되는 음향과 무대 설치도 있고 하고 싶은 말들을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현수막 업체들도 코로나 시기 일부 마스크 업체들처럼 바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 비상사태가 누군가에게는 호기(好期)가 되는 모습이 눈에 띤 것이다.
주말, 광화문을 지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봄나들이를 나와 한복을 입은 내국인들, 경복궁을 한복까지 입고 체험을 하려는 노랑머리의 외국인들까지 뒤섞여 산만하기 그지없는 광화문 거리를 보며 지나노라니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아니, 개운치 않았다기보다는 창피하고 괜한 오지랖에 외국인들이 직접 본 격동의 대한민국을 뭐라고 표현할지가 신경이 쓰여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지어는 ‘서울의 봄’ 이라는 표현이 이젠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에게 정의(正義)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왠만한 사람들은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정의는 진리의 올바른 도리라는 의미보다는 내 신념에 맞고, 자신들의 진영 논리에 맞으면 정의가 되는 것이 된다.
언젠가 정의의 사전적 의미가 그렇게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어쩌면 대한민국 서울의 집회문화가 체험하고 싶어지는 한국문화(K-culture)로 말로만 외치는 평화의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아닌 우려도 든다.
강의를 나가고 있는 학교의 유학생이 집회문화를 체험했다고 사진을 찍어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본 뒤라서 광화문을 지나며 보이는 광경에 오지랖은 더 해졌다.
또, 같은 도시에서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이들이 모두 광화문과 헌재 앞 차가운 길바닥에 나가 sns에 피드 되는 사진들을 보노라니 여감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한쪽은 탄핵, 한쪽은 탄핵 반대를 외치며 각자의 진영 논리에 맞춰 힘든 시위 참여를 하고 있겠지만 그들은 모두 내 이웃이고 내 지인이지만 각자의 정의(正義)가 다르다.
이제, 날카로워 질대로 날카로워진 그들에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말은 자신들의 진영 논리와 다르다 하여 적군의 말로 들린다.
그처럼 올바른 정의는 각자가 ‘맞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 정의인 것이다.
반대로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게 정의인 것이냐?” 고 농담처럼 웃으면서 서로에게 묻는 일들이 예사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중도(中道)적인 사람들 또는 국민들의 판단력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언제까지 우리나라가 이래야 하는 것인가?
국민들을 너무 사랑하시어, 국민들의 의견들을 너무 존중하시어 차가운 길거리에서 국민들이 뽑은 사람들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는 현상을 ‘참여’라고 말하기는 조금 왠지 너무 비겁해 보이지 않은가?
부디, 국민들에게 힘겨루기처럼 보이는 집회문화 속 인증 샷들보다는 깔끔한 정장에 반짝이는 금뱃지를 달고 멋지게 일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고싶다.
서울,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 빠른 시일 내에 분주함 속에 평화가 흐르는 문화도시로 돌아오길 바란다.
유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물으니 여러 장소중 우선 순위에 “경복궁에 가고 싶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 아이들에게 격동의 봄이 아닌 진짜 서울의 봄으로 진짜 한국문화(K-culture)를 보게 해야 한다.

[박미주 교수(작사가. 김포대 특임교수)]
한국 에니어그램 경영협회 부대표
박미주의 마음연구소 소장
대중가요 작사가
2014년 서울 경제 100인의 CEO 선정
김포대학교 특임교수(태권도융합과)
파주민보, 미디어파인 칼럼리스트 外
[학력사항]
서강대학교 경영학사
중앙대학교 창업 대학원 기후경제학 석사
[저서]
공감세상ㆍ생각으로 피어나다
에니어그램 인생 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