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앤 다크니스’, 실화라 더 공포적인 크리처 무비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3.16l수정2021.03.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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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빅토리아 시대의 끝 무렵인 1898년 영국 런던. 대륙에선 독일과 프랑스가 패권 다툼을 하고 있었지만 식민지 사업으로 앞선 제국주의 영국이 가장 번성하던 때. 3국이 아프리카 대륙을 제멋대로 ‘땅따먹기’ 하던 시기다. 인도 파병 경험이 있는 군인 겸 건축가 패터슨 대령(발 킬머)이 케냐 사보강 다리 건설 책임자로 파견된다.

제국의 명분은 아프리카를 구하고 노예 생활을 청산해 줄 철도 사업이라고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보다 먼저 현지 식민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인부들은 현지의 이슬람교도와 인도에서 압송돼온 힌두교인이 섞여 있다. 현지인의 정신적 지도자는 사무엘이고, 힌두교인의 지도자는 압둘라.

사무엘은 패터슨에 협조적이지만 압둘라는 거리를 둔다. 간호사가 사자에게 물리자 그날 밤 패터슨은 단 한 방으로 사자를 제압해 단숨에 지지도를 높여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런데 7주 후 인부 중 가장 강인한 공사 감독 마히나가 사자의 먹이가 된 후 수십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해 인부들이 동요한다.

인부를 습격하는 주인공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고스트(귀신)와 다크니스(어둠)라고 불리는 2마리의 수사자로 일반 사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신격화된 존재다. 패터슨은 본국에 지원군을 요청하지만 무시당한다. 그러자 사무엘이 친구인 유명한 백인 사냥꾼 레밍턴(마이클 더글러스)을 부르고, 그는 마사이족 전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노련한 레밍턴은 치밀한 사냥 계획을 세우지만 고스트와 다크니스는 그를 비웃듯 살인을 계속한다. 마사이족 전사들은 사자들이 ‘피에 굶주린 악마’라고 치를 떨면서 되돌아가고 인부들도 모두 떠난다. 남은 패터슨, 레밍턴, 사무엘은 사자들이 생존이 아닌 재미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걸 알고, 격전 끝에 한 마리에게 총상을 입히고 한 마리를 사살한다.

들뜬 마음으로 샴페인을 터뜨린 다음날 아침. 레밍턴의 텐트에 간 패터슨은 그가 나머지 한 마리에게 당한 걸 확인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고스트 앤 다크니스’(스티븐 홉킨스 감독, 1996)는 공포 영화로선 꽤 긴장감을 준다. 크리처 무비가 SF 장르로까지 확장돼 일반화된 현재로선 시시하다고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매우 현사실적인 설정이라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두려움을 안겨 준다.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토착 신앙이 있고, 그중에서 애니미즘은 흔하다. 고스트와 다크니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지인들은 두 마리 사자를 신격화해 ‘죽은 주술사의 현신’ 혹은 ‘백인이 세상을 지배하는 걸 막으러 온 악마’라고 여긴다. 두 마리는 일반 사자와 달리 대낮에 활동할 뿐만 아니라 먹이활동이 아닌 이유로 습관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겉으론 상업적 공포영화의 외피를 덮고 있지만 교묘하게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 비꼰다. 감독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호주에서 데뷔한 뒤 미국에서 활동 중이고, 제작국은 미국이다. 확실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레밍턴은 자국이 둘로 갈라져 싸웠기에 떠나 아프리카에 정착했다며 미국인임을 암시한다. 고스트와 다크니스의 박제는 미국 시카고의 한 박물관에 있다.

레밍턴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구 병동을 폐쇄하고 정밀한 신 병동을 건설하는 것. 구 병동에서 피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사자들이 달려든다는 이유다. 이는 피(영토와 자원)에 굶주린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로 득달같이 몰려온다는 비유다. 백인들은 교량 건설이 두 세계를 연결한다는 낭만적인 얘기를 한다. 백인들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화를 합리화하는 변명이다.

호랑이와 달리 사자는 무리 생활을 하고 사냥은 주로 암사자들이 협동한다. 서열 다툼에서 밀려나거나 노쇠한 수사자는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살다 죽는다. 이 작품처럼 두 마리의 수사자가 함께 다니고, 그러다가 무리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스트와 다크니스는 좀 다르다.

어쩌면 신격화된 대로 그 땅을 노략질하는 백인들을 처단하고 싶은 흑인들의 염원이 투사됐을 수도, 아니면 이기심으로 환경을 궤멸시키는 인류에 대한 자연 신의 노여움의 반영일 수도 있다. 최초의 철학자이자 밀레토스 학파의 수장인 탈레스는 세상을 구성하는 자연적 물질의 근원을 물로 봤다.

2600여 년 전에 첨단 도구도 없이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이 천재의 자연철학은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그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물, 흙, 불 사이엔 상호 평형 유지의 자연법칙이 있다고,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기본은 공기라고 주장했다. 탈레스가 최초로 신앙에서 벗어난 자연철학을 주창한 데 따른 것이다.

독일 계몽시대의 토마지우스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자연법의 세 원리를 내세웠다. 타인이 내게 하지 않도록 바라는 행위를 나도 타인에게 하지 말 정의의 원리, 타인이 내게 해 주기 바라는 걸 나도 타인에게 해 줄 예의의 원리, 타인이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행동하길 원하듯 나도 그렇게 하는 정직의 원리다.

만약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침략해 개발함으로써 동물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고스트와 다크니스는 사람의 개발 범주 안에 들어와 그토록 살천스럽게 살인하지 않고 자신들의 서식지에서 일상적으로 살다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고 죽었을 것이다. 물론 현지 인부들도 희생당하지 않았을 테고.

킬머와 더글러스라는 당시의 톱스타가 등장하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두억시니처럼 공갈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두 사자라는 느낌을 줄 만큼 그들이 흩뿌리는 공포감은 만만치 않다. 독이 오른 패터슨과 레밍턴이 추적에 나서 발견한 사자들의 은신처는 인간의 과욕이 낳은 재앙이 어떤지 섬뜩하게 직유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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