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기성세대의 위선에 맞선 아이의 위악의 판타지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3.20l수정2021.03.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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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날씨의 아이’(2019)는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근 애니메이션이다. 16살 섬 소년 호다카는 가출해 2달째 계속 비가 내리는 도쿄로 간다. 3일을 굶자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는 18살 소녀 히나가 공짜로 햄버거를 준다. 호다카는 배에서 만났던 케이스케의 작은 편집 대행사에서 숙식하며 그의 조카 나츠미와 함께 어시스트를 해 준다.

호다카는 불량한 어른에게 끌려가는 히나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우연히 습득한 권총을 허공에 발사한다. 그리고 큰돈이 필요한 그녀를 위해 국지적으로 어느 정도 비를 그치게 하는 그녀의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벌고자 SNS에 맑은 날을 선물하는 서비스를 해 준다고 올리고, 점점 손님이 늘어 꽤 많은 돈을 번다.

호다카는 히나의 생일 선물을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녀의 초등학생 남동생 나기에게 조언을 구한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기는 호다카보다 형 같다. 가출 신고가 돼있는 호다카가 권총까지 지닌 사실을 안 경찰들이 케이스케의 작업실에 이어 히나의 집을 방문한다. 히나는 호다카를 숨기지만 경찰은 남매가 보호자 없이 사는 것도 불법이라며 아동 상담사와 다시 오겠다고 한다.

케이스케는 사건에 연루되기 싫다며 호다카에게 두둑한 돈을 쥐여주고는 집으로 가라고 내쫓는다. 호다카는 아동 보호소에 가지 않기 위해 짐을 싼 히나 남매와 동행한다. 도쿄는 엄청난 비가 쏟아지며 호우 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8월인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눈이 내린다. 셋은 길거리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다.

히나가 소원을 빌자 큰 벼락이 내리치고 그 틈을 이용해 도망친 뒤 그날 밤 묵을 방을 구한다. 호텔 안에서 히나는 소원을 빌수록 자신의 몸이 부분적으로 점점 더 투명해진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맑은 여름 날씨로 변한다. 그리고 호다카와 나기는 히나가 사라진 걸 알고 경악한다. 히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간 호다카는 하늘에서 떨어진 히나의 반지를 발견하는데.

감독은 대놓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호다카처럼 16살의 고교생 홀든 콜필드다. 부유한 집에서 자랐지만 성장과정에서의 혼란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 못 하고 퇴학당한 그는 집으로 안 가고 뉴욕의 오염된 뒷골목에서 지식인의 위선과 기성세대의 속물근성을 경험한 뒤 크게 실망한다.

이런 절망감 속에서 그는 호밀밭에서 뛰어놀다 자칫 밭 끝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한 어린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자 결심한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그런데 결국 그는 순수한 여동생 피비에 의해 이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호다카와 히나의 관계를 대입할 법하다.

일본은 더 이상 경제대국이 아니다. 버블 경제의 거품이 빠진 뒤 수많은 국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계속 비가 내린다는 건 그만큼 국민들의 정서와 현실이 우울하다는 비유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위선의 탈을 쓴 기성세대는 더 이상 아이들의 모방 대상도, 보호자도 아닌 사육자일 따름이다.

아이들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아직 가치관과 세계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 성욕, 황금만능주의를 알게 된 그들에겐 어른의 보호와 지도와 안내가 필요하지만 제 욕심 챙기기에 급급한 이 사회적 구조는 그렇게 친절하거나 이타적이지 못하다.

아나운서가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의 폭우’ 운운하는 이상 기후로 도쿄가 물에 잠기자 한 할머니는 고작 100년 정도의 기록으로 이상 기후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는다. 수백, 수천 년 전에 지금보다 더 큰 폭우가 내렸을지 누가 아냐고. 물에 잠긴 도쿄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에 할머니는 원래 도쿄는 만이었다며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라고 정정해 준다.

히나는 1년 전 운명 직전의 엄마를 간호하던 중 빛을 좇아 한 폐건물 옥상에 올랐다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신사의 문을 통과한 뒤 날씨를 조정할 수 있는 ‘맑음 소녀’가 됐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대사는 사실 우리의 보편적 정서다. 하지만 ‘원래 날씨란 하늘의 기분’이란 대사가 그걸 부정한다.

어른은 그치지 않는 우중 날씨에 대해 ‘지금 하늘의 균형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균형은 자연스럽게 방치할 때 이뤄진다. 균형이 무너진 건 인간이 환경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난개발과 각종 공해로 지구촌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히나는 탐욕스러운 기성세대가 희생시킨 자연이자 어른들이 배려해 주지 않는 아이들을 뜻한다. 기성세대가 파괴한 이 환경을 물려받을 당사자는 바로 어린이들 아닌가! 한 할아버지는 ‘인간은 잠시 머물 뿐’이라며 땅과 하늘이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지적한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외쳤던 프로타고라스는 틀렸다.

호다카는 사람들에게 맑은 날씨를 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히나에게 ‘이 세상 힘들어도 자신을 위해 살자’고 부탁한다. 그건 이기주의가 아니라 수정주의 나르시시즘(자기애)이다. 케이스케는 ‘이 세상은 원래 살짝 미쳐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냐’라고 말한다.

그는 이 영화의 인물 중 가장 모순적이다. 때론 호다카를 돕는 듯하다가도 때론 걸림돌이 된다. 그는 ‘남의 자식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할 수 없다’고 호다카를 내치고, ‘그만 어른이 돼’라고 야단치기도 한다. 경찰들은 철저하게 정권의 앞잡이다. 지구에 몇 안 남은 황족을 신성시하는 일본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의 망령의 수호자다.

호다카는 ‘빛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더 이상 길이 없었다’라고 술회한다. 영화 말미는 3년 뒤다. 그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온다. 우리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 제도권에 들어와 고교를 졸업한 그는 희망을 품지만 비는 여전히 내린다. 맥도날드는 메타포다. 아름다운 비주얼을 판타지와 엮은 수작인데 비관적이고 음울한 느낌이 강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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