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원 소걸아’, 무소유의 소유적, 무목적의 목적적 철학 무협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4.09l수정2021.04.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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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무장원 소걸아’(찬지아샹-진가상-감독, 1992)는 찬지아샹(진가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저우싱즈(주성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저우 특유의 코미디와 철학이 어우러져 참된 삶의 전범을 똥기는 무협 영화다. 아찬은 남부러울 것 없는 광저우의 갑부 소 장군(우멍다-오맹달)의 무매독자다.

그는 집안에 돈이 넘쳐나기에 아쉬울 게 없어 글조차 배우길 꺼렸다. 25살 생일에 술집 이화원에 갔다 기생 여상(장만-장민)을 놓고 황제의 최측근 고위 관리 왕야와 시비가 붙는다. 왕야는 무림 고수 무기의 도움으로 황제에게 점수를 땄기에 그에게 대접을 하느라 여상을 자리에 앉히려 했던 것.

그러나 사실 여상은 일부러 기생을 가장하고 무기를 암살하려던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개방파 방주가 무기에게 살해당했던 것. 아찬은 여상에게 청혼하고 귀찮은 여상은 나라에서 주최하는 무술대회 무장원에서 장원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노라 답한다. 이에 소 장군은 아예 수도로 이사한다.

아찬은 글을 모르지만 아버지의 뇌물로 필기 예선을 통과하고, 결승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우승한다. 하지만 무기가 까막눈인 걸 폭로하는 바람에 황제로부터 그 가족은 평생 거지로 살라는 벌을 받는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빼앗긴 소 씨 부자는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려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무기에 의해 아찬은 혈맥이 끊겨 무공을 상실한다.

가가호호를 돌며 구걸을 하던 아찬은 여상의 여동생 소취를 통해 여상까지 만나 개방파에 들어간다. 무기에게 복수하려는 개방파는 원로 막대숙과 여상이 무기와 그의 추종자들의 집회에 잠입한다. 알고 보니 무기는 곧 있을 황제의 소풍 때 급습해 그를 암살하고 자신이 황제에 등극할 모반을 모의 중이었다.

그런데 워낙 무공이 뛰어난 무기에게 은신이 들통 나 여상이 붙잡히고 막대숙만 간신히 탈출하는데. 아찬은 광저우에 살 때 돈을 물 쓰듯 했는데 그냥 과시만 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당시 호일청이라는 범상치 않은 거지가 구걸을 하자 하인이 가로막았지만 그는 큰돈을 줬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화원에 한 달간 머물 돈까지 지불해 줬다. 무공을 잃고 거지가 된 아찬은 개방파의 명약인 대단환을 복용하고 내공을 회복해 타구봉법을 연마함으로써 방주가 되라는 여상의 제안을 거부한다. 그가 할 줄 알고, 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자는 것뿐이었다. 돈과 무공을 잃자 무기력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 호일청을 만나 잠을 자면서 펼치는 듯한 수몽나한권과 함께 무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인 강룡18장 중 17장까지 익힌다. 저우의 영화는 허무하고 황당한 코미디가 넘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가식과 허식을 마음껏 조롱하고픈 것인데 이 작품 역시 그런 블랙코미디가 많다.

게다가 그의 코미디는 스피디하다. 여상은 사실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찬의 눈엔 기생의 신분이다. 그럼에도 아찬은 첫눈에 반해 청혼하는 식이다. 소 장군 역시 그런 아들의 무모함을 탓하기는커녕 그 의견을 존중해 준다. 아찬이 이화장에서 호일청에게 호의를 베푼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지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은 인과론이다. 비록 낭비가 심하고, 자만심이 강해 학문에 조금의 뜻도 갖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인간성만큼은 자비로웠기에 고난을 만나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아찬과 여상의 만남도 철저하게 인과론에 뿌리를 둔다.

만약 그날 이화장에 아찬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개방파는 여상을 이용한 미인계로 복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찬 역시 기복 없이 오래오래 풍요롭고 환락적인 생을 누리다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운명으로 엮여 있었고, ‘부귀영화-몰락-깨우침’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과정을 겪게끔 항로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서양에 신에 의한 결정론인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 의식이 팽배한 것처럼 중국에도 ‘신의 섭리’라는 이념이 강하다. 이 작품 역시 ‘흥망성쇠는 모두 하늘의 뜻’이라는 대사를 통해 결국 부처님 혹은 전지전능한 존재 또는 자연의 섭리가 시시비비를 가려 권선징악의 판정을 행한다고 낙관주의를 설파한다.

다만 그런 올바른 인과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선 ‘포기’와 ‘노력’, 그리고 ‘해탈’이 짜장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기의 반역을 평정한 아찬에게 황제가 필요한 게 뭐냐고 묻자 아찬은 고개를 가로젓고 그냥 잠을 자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쉬울 것 없는 부자를 경험했기에 그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거지가 돼 식솔들과 헤어질 때 집사는 아찬에게 “글을 배우세요”라고 충언한다. 아버지가 구걸하러 나간 사이 그는 거처에서 홀로 글을 읽힌다. 강룡18장 중 17장까지밖에 못 익힌 그가 18장을 터득할 수 있었던 건 올바로 살고 싶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고 싶은 강렬한 의지와 그에 동반한 노력 덕이었다.

그럼으로써 아찬과 여상이 체득한 것은 해탈이다. 진정한 행복은 속세의 천박한 욕심에서 벗어난, 사랑과 사랑하는 가족에 있다는 지극히 원리원칙적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깨우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원론적 진리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호일청을 만난 아찬은 고해무애(苦海無涯)라고 쓴다.

험난한 세상은 끝이 없다는, 절망을 말하는 것. 그러자 호일청은 존엄감과 자신감을 가지라며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 아찬이 예전에 자신이 도와준 돈을 갚으라고 말하자 호일청은 “내가 그 돈을 줘도 넌 잃어버린 걸 못 찾아”라며 거부한다. 돈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영원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물질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강구하고 갈구해야 한다는 이 불교, 유교적 논리! 호일청은 뭘 하고 싶냐고 묻고 아찬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답한다. 모든 상황이 끝난 뒤 황제가 아찬의 지지세력이 확장되는 걸 우려하자 아찬은 “거지 숫자는 당신의 정치가 결정한다”라고 뼈 있는 말 한마디를 던진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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