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 내 이름이 ‘나’는 아니라는 정체성에 관한 수작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4.18l수정2021.04.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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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톰보이’(2011)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데뷔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뒤늦게 공개됐다. 10살 로레(조 허란)는 6살 자매 잔, 셋째를 임신한 엄마, 그리고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아빠와 사는 평범한 소녀다.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이제 막 새 동네로 이사 왔다.

소녀들보다는 소년들과 뛰어놀고 축구를 하는 게 더 좋은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만 입고 다닌다. 창밖으로 소년들이 노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그들 곁에 슬며시 다가가고 그런 그녀에게 동갑내기 소녀 리사(진 디슨)가 접근한다. 로레는 자신의 이름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하며 소년 흉내를 낸다.

로레는 남자들과의 축구 경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쉽게 친해지고, 그런 그녀를 리사는 좋아하게 돼 숲속에서 먼저 입을 맞춘다. 어느 날 리사가 ‘그’를 만나기 위해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잔이 문을 열어 주고는 ‘오빠’는 부재중이라고 말한다. 잔이 남자 행세를 엄마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하자 로레는 아이들과 어울리도록 해 주겠다며 달랜다.

그런데 한 소년이 잔을 밀쳐 상처를 입히자 로레는 그를 흠씬 두들겨 팬다. 얼마 후 소년과 그의 엄마가 로레의 집을 찾아와 항의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로레의 남자 코스프레를 알게 된다. 다음날 엄마는 로레에게 강제로 치마를 입힌 뒤 소년과 리사의 집을 방문해 사과하고 정체를 밝히려 하는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만큼 감독의 솜씨는 수려하고 유려하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로레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달리는 ‘블레이드 러너’다. 아직은 성적으로 성숙한 나이가 아니고 어른처럼 성욕을 느낄 때도 안 됐지만 남자이고 싶은 것은 확실하다.

그건 성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성격과 성향적인 차원이다. 자매가 노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로레는 장난감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그에 맞춰 잔은 발레를 한다. 로레는 잔에게 ‘정글북’을 읽어준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가 아니다. 이는 집에서 인형놀이를 하기보다는 밖에서 남자들과 뛰어놀고 싶은 로레의 취향을 의미한다.

축구를 즐기던 소년들이 인근에서 대놓고 소변을 보자 로레는 슬그머니 숲속으로 들어간다. 리사가 내일 소년들과 물놀이를 간다고 하자 로레는 자신은 일이 있어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 집에서 잔과 놀다 기발한 발상을 한다. 장난감 점토로 남성 성기를 만든 뒤 윗부분을 자른 여자 수영복 팬츠만 입고 앞부분 내부에 그것을 붙이는 것.

그렇게 다음날 ‘그’는 소년, 소녀들 사이에서 ‘소년’으로서 당당하게 수영을 한다. 로레는 축구를 할 때 다른 소년들처럼 상의도 벗는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상의를 벗고 근육을 확인하던 그녀는 말라깽이 체격이란 걸 체념한 뒤 대신 침을 뱉어 본다. 피지컬적으로 부족한 남성성을 거친 행위로 보완하려는 것.

로레를 미카엘로 여기는 리사가 먼저 한 번 ‘뽀뽀’를 하자 다음엔 로레가 먼저 리사에게 ‘뽀뽀’를 한다. 이는 로레가 동성애자라는 의미 이상의 알레고리다. 물론 그녀가 나중에 레즈비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톰보이’라는 제목부터 로레라는 인물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동성애를 넘어선 사회적 편견과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최소한 2만 년 전부터 종교가 존재했다고 한다. 부족, 민족마다 다르지만 대충 종교적, 신화적 개념은 일원론, 이원론, 삼위일체론이란 게 지배적이었다. 유일신적 개념도 있지만 사회 전반적인 이념과 사상에는 이항대립이 주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항대립을 중용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심지어 기독교조차 영(Spirit), 육(Body), 혼(Soul)의 삼위일체론에서 영을 제거했다. 즉, 이 사회는 남성과 여성 외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남성에겐 더욱 남성적일 것을, 여성에겐 더욱 여성적일 것을 강요한다. 도대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게 뭘까? 중용은 두루뭉술함(뜨뜻미지근함)과 화해라는 양극의 장단점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라는 제3의 영역도 있거늘.

플라톤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양성의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인용해 태초의 인간은 자웅동체였다고 썼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남자 귀족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개념과 관념은 변하기 마련이고 은밀한 사생활에서 특정 행태가 강요되거나 종용돼선 곤란하다.

다만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적 통념과 고착된 관습이 비제도권적인 취향과 성향을 지닌 개체들의 인격을 말살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다. 풍선은 지나치게 바람을 주입하거나 압력을 가하면 터진다. 적당한 여유가 선택의 폭과 자유의 한계의 지평을 넓혀 준다.

엄마는 딸의 남자 흉내를 진작부터 막고 있었다. 치마를 입힌 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하니? 난 방법을 몰라. 있으면 가르쳐 줘”라고 울먹인다. 이에 반해 아빠는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조용히 행동으로 달래고 위로해 준다. 감독의 페르소나. 로레는 잔에게 자신의 뒷머리를 자르게 하면서 “엄마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티 나지 않게 잘라”라고 당부한다.

그리곤 잘린 머리를 자신의 코에 대곤 거울을 보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또 엄마의 배에 대고 태아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엄마가 “뭐라고 했냐”라고 묻자 웃기만 한다. “누가 뭐래도 너는 네 성향대로 살아”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정체가 드러나 외톨이가 된 로레에게 리사가 찾아온다.

리사는 “너 이름이 뭐니?”라고 처음 만난 듯 묻고 로레는 “로레”라고 역시 여자로서 처음 만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말한다. 나의 이름은 부모의 결정에 의해 그렇게 지어졌을 뿐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냥 사회적 약속일 따름이다. 성향, 취향, 성정체성은 내가 갖고 태어나고 내가 정하는 것이지 사회적 강요가 결정할 게 아니다. 엔딩 신은 정말 강렬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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