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선거’, 30대 여성의 발칙, 감동, 정치 혁명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6.05l수정2021.06.0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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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청춘선거’(민환기 가독)는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1984년생 제주 이주민 여성 고은영이 2018년 6월 13일 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고은영은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현실의 부조리에 큰 충격을 받고 제주도로 이주한다.

그리고 한때 데모가 전부였던 윤경미가 사무처장으로 있는 진보정당 녹색당의 도지사 후보로 출마한다.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후보마저 제친 터줏대감 무소속 원희룡 후보의 당선. 하지만 돈도, 조직도 변변치 않은 데다 정치 경험도, 사회 경험도 미미한 그녀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정치 영화이면서 그렇지 않다. 환경에 관한 영화이고, 아주 평범한 다수의 서민에 관한 영화이다.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조상 대대로 오랫동안 한곳에 정착해 살아온 사람들,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 그리고 성소수자 같은, 제도권으로부터 소외된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영화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85%가 남자이고, 평균 연령은 55살이다. 과연 현 세상은 나이 많은 남자가 이끌어야 마땅한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질문이다. 인류는 원시인 시절부터 집단을 이루고 리더를 옹립해 생존해 왔다. 털이 없어 추위에 약하고, 힘이 약해 포식자를 피해야 생존할 수 있는 인류는 경험 많은 남자와 그를 따르는 남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체제는 문명을 통해 도시국가의 형태를 갖추자 더욱 공고해졌다. 왕이 생겼고, 왕을 추종하거나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귀족 계급이 형성됐다. 서민 계급과 노예 계급도 동시에 발생했다. 왕족과 귀족이 경제권을 쥐고 정치를 쥐락펴락함에 따라 평민은 국가의 부속물이자 지도층의 소비재가 됐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 공화정치가 있긴 했지만 세상은 지도층 위주로 흘러갔다. 따라서 기득권을 쥐었거나 귀족 중 힘있는 남자가 정권을 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다. 교과서는 계급도, 직업의 귀천도 없다고 가르치고, 헌법은 만인의 인권은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그릇된 권력주의에 경도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약자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아?’라며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려 하고, 서민들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돈, 돈’ 하며 살아간다. 서민들의 이루기 힘든 물신주의가 과연 그들의 탓인가? 정치권과 기득권이 정의롭지 못한 이기주의에 물든 탓은 아닐까?

고은영은 사회 초년생 때 서울에서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잘 만큼 치열하게 살다 건강이 망가지자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청춘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용틀임을 해 봐야 ‘금수저’를 따라가기는커녕 미래에 대한 설계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인간성이나마 회복해 보고자 모든 걸 훌훌 털어 버리고 ‘청정’ 제주도로 갔다. 그러나 제주도는 그녀가 생각한 유토피아와 달랐다. 지도층은 국제자유도시라는 허상을 세우고, 신자유주의라는 헛된 사상을 설파하며, 난개발로 환경과 도민의 일상생활을 마구 해체하고 파괴하고 있었다.

그녀가 선거에 나선 이유이다. 두 번째는 기성 정치인들이 혹세무민하는 경제 이론과 그 때문에 무너지는 생태계, 즉 자연법이다. 기득권 정치인은 제주도에 제2 국제공항을 건설하려 한다. 호텔 등 리조트 시설도 늘리려 한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도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입을 늘린다는 게 명분.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과유불급이 인간사의 거의 모든 분야에 해당될 만큼 명언이라는 점은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웬만큼 세상을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난개발은 일단 제주도의 환경을 파괴한다. 호텔 등 레저 시설이 늘면 일자리는 많아지겠지만 토착민들의 주거지는 사라진다.

일자리 창출이 도민들에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일터를 잃은 농부와 어부 등이 호텔 등의 노동자가 됨으로써 자본가의 노예로 전락할 것은 명약관화이다. 그들이 뼈 빠지게 일해 봐야 농업과 어업으로 얻었던 성취감과 소득만큼의 만족을 느낄지는 미지수이다. 아니, 절대 아닐 것이다.

백년대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장 자크 루소, 스피노자 등이 자연법을 주장하고 들뢰즈가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외친 건 다 이유가 있다. 100년도 채 못 살 사람들이 저들 사는 짧은 삶이 편해지고자 후대의 자손들과 모든 동식물들이 내내 살아가야 할 자연을 파괴하라고 누가 허락했는가!

세 번째는 정치이다. 과연 정치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이승만 이래 이어져 온 보수 세력이나, 김대중부터 정권 교체를 해온 이른바 ‘중도 진보’ 세력이나 모두 정권을 잡았을 때 도대체 제대로 해 낸 게 뭘까? 이 영화는 진정한 혁명, 제대로 된 변화를 묻는다.

세월이 흐르면 인식론은 바뀌기 마련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의 목표는 정권을 잡는 게 맞지만 정권을 잡으려는 목적은 국민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우루과이 제40대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2010년 3월 대통령 취임 때 재산으로 1987년식 폭스바겐 비틀 한 대를 신고했고, 퇴임 후엔 그걸 직접 운전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제공했고, 자신의 월급 약 1350만 원 중 87%를 사회에 기부했다. 퇴임 후에는 이전에 살았던 20평의 농장에서 농부로 생활했다. 대학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그는 청년 시절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좌파 게릴라였다. 원희룡 후보의 지지자는 고은영에게 “새파랗게 어린 것이”라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정치는 누가 해야 하느냐?”라고. 오는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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