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요일’, 인간의 불평등과 참행복이란?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8.16l수정2021.08.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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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제8요일’(1996)은 인생과 행복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한 자코 반 도마엘의 작품으로 아픈 결말의 ‘토토의 천국’(1991)보다는 훨씬 따뜻하게 끝맺는다. 20살을 앞둔 다운증후군 환자 조지(파스칼 뒤켄)는 4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요양원에서 같은 환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중년의 아리(다니엘 오떼이유)는 성공한 세일즈 기법 강사이다. 아내 줄리(미우 미우)는 그의 차갑고 계산적인 삶의 태도에 염증을 느껴 두 딸을 데리고 친정 근처 바닷가 마을에서 살며 이혼을 준비 중이다. 아리는 비 오는 어느 날 밤 운전을 하다 요양원을 막 탈출한 조지의 개를 치게 된다.

조지는 정신박약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어머니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 아리는 얼떨결에 조지를 집에 데려온 뒤 그가 내미는 주소로 찾아가지만 그의 엄마는 없고 집은 이미 엄마 사후에 팔린 상황. 아리는 조지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 파비엔느의 주소를 받고 그리로 데려간다.

그러나 파비엔느와 그녀의 남편은 조지를 쫓아낸다. 결국 아리는 조지를 요양원으로 돌려보낸다. “내 아이도 잘 돌보아 주지 못하는데.”라며. 오는 14일은 큰딸 알리스의 생일이지만 아리는 강의가 바빠 딸에게 갈 수 없다. 강의가 열리던 중 동료들과 요양원을 탈출해 버스를 탈취한 조지가 강의실에 나타나는데.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하는 영화는 꽤 많다. 하지만 저마다의 인식론이 제각각인 까닭에 호불호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장 자크 루소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정말 ‘인생 영화’가 될 듯하다. 아리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표상이라면 조지는 루소의 자연법 혹은 그 안에서 사는 순수한 미개인이다.

아리는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 주택에서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불행하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아내 역시 한눈을 판 게 아니지만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아리는 가족에게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안겨 줬을지 몰라도 가족애는 풍부하게 베풀어 주지 못했다. 자기류만 가득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였다. 결국 그는 그토록 개미처럼 일했던 이유인 가정을 일 때문에 잃었다. 조지는 세상에 없는 스페인 오페라 가수 루이스 마리아노와 엄마를 수시로 본다. 세상이 열리기 전에 음악만이 있었다는 인트로의 내레이션과 일맥상통하는 설정이다. 음악은 예술이고, 그 존재의 근거는 사랑이다.

사람들이 꺼리는 조지이지만 그의 마음만은 순수하다. 아리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내면이 피폐한 패배자이다. 조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유일한 혈육인 누나에게마저 외면당했지만 예쁜 판타지가 있다. 이 살벌하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루소는 ‘자연은 부패한(사회적인) 인간들 속에서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인간들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테제를 격률처럼 여기고 살았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공평과 중용, 그리고 존경할 만한 엄격한 기품으로 행동을 자제하라.”라며 중용의 덕을 설파했다.

그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요지는 ‘사유 재산이 인간불평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불평등을 자연적 혹은 신체적 불평등과 도덕적 혹은 정치적 불평등의 두 가지로 봤다. 후자는 사유 재산이 인정됨에 따라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발생했고, 그래서 계급 사회라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 않은 체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전 세계의 인류가 처한 자연적 환경과 각 개체가 생래적으로 받은 육체의 조건을 얘기한다. 아리와 조지에서 보듯 그들은 자연적으로나 생체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외형적으로는 아리가 압도적 우위이다. 하지만 아리가 조지를 돌보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연이 쌓일수록 역전된다.

조지가 아리를 위로하고, 아리는 그 위무를 통해 자신이 잘못 살아왔으며, 어떤 게 진정한 행복이고 우정이며 사랑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조지 일행의 ‘깜짝파티’로 자신이 변했음을 가족에게 알릴 수 있게 된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니체의 가치전도는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아리의 축재를 추구하는 허영을 경멸로, 명성에 대한 선망을 수치로 각각 깨닫게 해 준 조지는 그러나 강자의 권력과 약자의 억압이 고착화된 이 사회법을 따르는 걸 거부한다. 그는 “(이 사회에서는)성인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외치며 허공에 몸을 던진다. ‘하늘을 나는’ 그의 표정은 아주 평화롭고 만족스럽다.

현대인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실존을 자기 안에 두고 사는 게 아니라 외부에 피투된 채로 산다. 타인과 사회의 평가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규준으로 삼고, 외부의 평가에 의존한 채 자아의 외부에서 산다.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간단하다. 사랑이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한 건 자본주의 입장에서 볼 때나 현 시대상에 비춰 볼 때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그 본질만큼은 순수하고 숭고하다. 그는 ‘미개인의 욕망은 육체적인 욕구를 초월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동물은 겨울을 준비하지 않는 바에야 딱 알맞을 만큼만 먹지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존 로크는 “사유가 없는 곳에는 범죄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인간 본연의 동정심과 우정과 사랑을 되돌리라는,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살짝 변주한다. 인간성을 완성하는 건 이성이고, 그걸 강화하고 보완하는 건 반성이다. 조지는 아리의 반성이었다. 제목은 창조주가 모든 창조를 끝내고 쉬던 제7요일에 ‘더 필요한 게 없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다음날 조지를 창조했다는 뜻이다. 조지는 반성이자 희망이고 사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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