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일제강점기가 막을 내린 지 76년도 넘었지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와 직결되는 재일 동포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콘텐츠는 의외로 적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김철민 감독)는 바로 그 고뇌에 대해 깊게 파고든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9세기 말 고종의 조선은 열강들의 제국주의가 이빨을 다투는 야욕의 무대가 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조선에서 대한 제국이라는 허울뿐인 근대적 국가로 탈바꿈‘된’다. 35년 만에 독립을 이루지만 허리가 잘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뒤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는다. 그리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장기 독재에 돌입한다.

그동안,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재일 동포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그들의 미래는 비전이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이 영화는 그런 것들을 1. 재일조선인, 2. 나를 찾아서, 3. 두 개의 조국, 4. 조선 사람으로 살기 위해 등의 섹션으로 나누어 조명하고 해부한다.

재일 동포는 일제강점기 때 현지에 정착한 1세, 당시 그들을 따라갔거나 현지에서 태어난 2세, 현재 청장년층인 3세, 그리고 유년층인 4세까지 있다. 최소한 80대 이상인 1세는 현재 대부분 사망했다. 감독은 그 4개 세대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우리가 몰랐던 재일 동포들의 크나큰 애환을 보여 준다.

감독은 2002년 금강산에서 재일조선인을 처음으로 만난 후 이 작품을 시작했다. 2005년 고베에서 만난 1세 서원수 씨(작고). 재학 시절 성적이 우수했지만 조선인이기에 일본에서 취업이 안 되어 조선총독부에 취업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마저 일본인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에 격분해 뛰쳐나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세들은 해방 후 왜 귀국하지 않거나 못 했을까? 미군정은 그들이 일정액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귀국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래서 눌러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많은 상념 거리와 고민 중 첫 번째이다. 과연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 만큼 미국은 우리의 친구인가?

2세, 3세들은 어렸을 때 평일에는 김치를 먹을 수 없었다. 그런 후 학교에 가면 김치 냄새가 난다고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밖에 못 먹었다. 일본 우익들은 재일 동포들을 ‘고키부리’(바퀴벌레)라고 비하하고, 차별한다. 해방을 맞은 1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주지 근처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2세들에게 조선의 글, 역사, 문화 등을 가르쳐야 민족혼이 죽지 않고 민족정신을 이어갈 수 있다는 훌륭한 인식론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 중, 고교 과정의 조선학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현실은 매우 어렵다. 한 교장은 교사들에게 매달 정확한 날에 급여를 주는 게 소원이라고 토로한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지원을 안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현지 우익들의 재일 동포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의한 언어적, 물리적 폭행은 의외로 심각했다. 정부 등의 불평등한 처우로 인한 불이익도 마찬가지. 다음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발생했던 2세들에 대한 어이없는 간첩 조작이다.

1951년생 강종헌 씨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학한다. 일본 고교에서 성적이 좋았지만 ‘조센징’이기 때문에 공직이나 대기업에 취업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또한 당시 일본 신문 한구석에 조그맣게 실린 전태일 열사의 분신 기사를 접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헌신하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그런 일본에서의 불평등을 이겨내고자, 그런 조국의 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유학한 이 재일 동포는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들과 함께 갑자기 남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죄로 13년을 복역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장기 집권을 위한 공안정치가 필요했기에 재일 동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것.

그는 “독립운동가(김일성)가 집권한 곳과 간토군(만주 주둔 일본군) 장교 출신(박정희, 다카키 마사오)가 집권한 곳은 다르다. 그럼에도 양쪽 모두 내 조국.”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런 2세의 고민은 3세에게 전승된다. 현재 재일 동포 사회에는 한국민주통일연합,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등의 단체들이 있다.

각 단체들은 친한, 친북 등의 성향이 다르다. 현지 교민들의 권익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두 우리 동포이지만 대한민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단체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 그래서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정부와 일본인은 물론 대한민국의 차별과 박해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래서 단체의 성격을 떠나 그들 모두가 믿고 바라는 해결책은 일관되게 통일이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어야 그 단체 소속이든 아니든 하나 된 조국으로부터 자국민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또 통일된 코리아가 가진 힘과 그 국민들의 위상 때문에 일본이 지금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70살의 강 씨는 말미에 13년의 청춘을 빼앗긴 데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현재의 심정을 밝힌다. “두 가지만 생각한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복해한다.”라고. 일제의 만행과 현재 일본의 박해에 화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그래야 현명하게 대처할 테니.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자. 어쩌면 그에게서는 패배주의가 아닌 낙관주의적인 운명론이 엿보인다. ‘이것도-우리네 인생과 처지-우리가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인으로 태어난 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라고 포효하는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아직도 일제강점기라는 타임 루프 안에 갇혀 있는 재일 동포에 주목하자! 그리고 통일을 외치자! 12월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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