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국 인디 영화계의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돈 다이’(2019)는 평범한 상업적 좀비 영화가 아닌, 정치, 사회적 메타포를 내포한 캠페인성 작품이다. 조용한 마을 센터빌. 극지방 자원 채취로 지구가 자전축에서 살짝 벗어나는 바람에 공동묘지에 묻힌 시체들이 살아나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경찰 로니(아담 드라이버), 여경 민디(클로에 세비니), 서장 클리프(빌 머레이)는 마을을 지키려 애쓰지만 좀비에 물려 좀비가 된 자들이 늘어만 간다. 공동묘지를 인수한 장의사 젤다(틸다 스윈튼)는 사무라이 검을 휘둘러 좀비들을 소탕한다. 좀비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머리를 몸에서 분리하는 것.

숲속에 숨어 사는 밥(톰 웨이츠)은 멀리서 망원경으로 이런 마을의 사태를 일일이 살펴본다. 클리블랜드 출신 젊은 힙스터 조(셀레나 고메즈)와 두 명의 친구들이 마을에 묵게 된다. 휴대 전화가 터지지 않고 모든 가축과 반려동물들이 사라진다. 로니는 끝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다고 되뇌는데.

다수의 관객들은 상업적 좀비 영화로 알고 관람했기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한다. 자무쉬에 대해 해박한 평론가 중에서 이전 작품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와 미국, 더 나아가 환경 파괴 등의 잘못에 무관심한 인류에 대한 비판 의식만큼은 봐 줄 만하다.

이 영화는 온통 대유와 은유 등을 앞세운 블랙 코미디로 설정되어 있다. 먼저 지구가 자전축에서 벗어나게 된 건 인류가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인류가 근시안적인 이기심 때문에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많은 종을 멸종시킨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미국에서 백야 현상, 혹은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한다거나 갑자기 시계가 고장 난다는 변화 등은 인류의 자만으로 인해 지구의 균형이 깨어진다는 메시지이다. 센터빌은 미국을, 숲속은 자연 세계를 대유한다. 한 마을 주민이 제 닭들이 없어지자 밥을 의심해 신고하지만 그는 추궁하는 클리프에게 총을 쏜다.

밥은 문명의 편리함보다 자연의 신성함을 추구하는 자연법 추종자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마을이 쑥대밭이 될 때 숲에 머물며 발견하는 게 ‘모비 딕’ 책. 이 소설이 19세기 미국 기독교 문명과 청교도 사회의 썩고 비린내 나는 현실을 비판했다는 것은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다. 밥은 이스마엘이다.

좀비는 바로 그런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경도된 미국인이다. 좀비는 저마다 커피, 와인, 사탕, 음료, 초코바, 아이스크림 등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테니스, 축구, 야구 등 생전에 하던 운동에 집착한다. 즉 지나치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 디지털 인류는 살아도 산 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이는 밥이 유일하다.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인물은 젤다인데 그는 지구인이 아니다. 센터빌 사람들은 그녀가 스코틀랜드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오해한다. 장례식장 안에는 금불상이 있고, 젤다는 그 불상에 ‘아미타불’이라고 절을 하며 일본 전통 복장으로 사무라이 검을 휘두른다.

현대 문명을 얼마나 비판하느냐는 골프를 즐기다 벼락을 맞아 사망한 중년 부부에서 절정을 이룬다. 젤다는 그 시체들에 과하게 화장을 해 준다. 그러나 자꾸 눈을 뜨자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인간은 이기심에,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동물들의 영역을 파괴하다 못해 놀이를 위해서도 그런 짓을 한다.

줄기를 이루는 건 스터질 심슨의 컨트리 송 ‘The dead don't die’. 삶이 끝난 후에도 사후 세계는 계속된다는 가사이다. 또한 ‘반지의 제왕’과 ‘스타워즈’도 유머의 잔가지로 사용한다.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카일로 렌 역으로 합류한 드라이버는 여기서 자동차 키에 ‘스타워즈’ 액세서리를 달았다.

마을 주유소를 운영하는 바비는 키가 작다고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인 빌보 배긴스, 프로도 등으로 불린다. 그의 친구는 “세상은 완벽하다. 작은 것들에게 감사하라.”라고 말한다. 역시 자연 찬가이다. 오죽하면 밥은 숲속에서 맛있는 포르치니 버섯을 채취해 품격 있는 식사를 음미하며 살까?

자무쉬는 대놓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조지 로메로 감독을 오마주 한다. 68년형 폰티악 르망인 조의 차를 보고 “조지 로메로 영화에 나오는 차 같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좀비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대가리를 잘라야 한다.”라는 대사의 ‘대가리’는 바로 트럼프이다. 자무쉬답다.

주인공들 외에도 스티브 부세미, 대니 글로버 등의 훌륭한 연기파들이 등장한다. 또한 주제곡 주인공 심슨은 물론 이기 팝까지 카메오로 등장하는 호화 캐스팅이다. 심슨의 주제곡이 질릴 즈음 등장하는 웨스턴 무비 스타일의 기타 솔로 BGM이 신선하다. 역시 예술가인 자무쉬의 스타일이다.

마을에 위기가 닥치자 경찰서를 찾은 젤다는 세 명의 경관을 내보내며 “이따 공동묘지에서 만나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는 것과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중의적 의미이다. 클리프는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지만 로니는 “대본 다 봤다.”라며 새드 엔딩을 선언한다.

그들은 좀비를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인간들의 유해이다. 영혼을 팔아서 물건을 샀겠지. 저들은 살아 있을 때도 좀비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신랄하게 인간의 황금만능주의와 탐욕을 향해 정면으로 펀치를 날린 영화가 얼마나 될까? ‘어차피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라는 대사가 유독 돋보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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