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블랙 위도우’에 이은 MCU 페이즈4의 두 번째 작품이다. 고대. 텐 링즈를 손에 넣어 최강의 전투력을 갖추고 불사의 몸이 된 웬우(량차오웨이)는 자신의 군대를 결성하고 전 세계를 점령해 간다. 20년 전 그는 신비한 동물들이 사는 별세상 탈로에 침입한다.

그는 입구를 지키는 여자 리(천파라)에게 패배하지만 서로 사랑에 빠진다. 둘은 탈로를 떠나 조직을 해체하고 텐 링즈를 갈무리한 뒤 샹치(시무 리우)와 쑤(장멍) 남매를 낳고 평범하게 산다. 웬우가 집을 비운 사이 그에게 당했던 갱들이 쳐들어오고 고향을 떠난 탓에 힘을 잃은 리는 살해된다.

귀가한 웬우는 분노해 텐 링즈를 다시 꺼내고 조직을 재건한 뒤 남매를 킬러로 키운다. 샹치가 14살 되던 해 웬우는 그에게 엄마의 복수를 하라는 임무를 맡기는데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꼭 돌아오리라 약속했던 오빠를 기다리던 쑤 역시 지쳐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된다.

현재. 샹치는 미국에서 고교 동창인 케이티(아콰피나)와 주차 요원으로서 평범하게 산다. 갑자기 악당 무리가 나타나 엄마의 유물인 펜던트를 빼앗으려 한다. 간신히 그들을 물리친 샹치는 쑤도 위험하다는 걸 알고 케이티와 함께 마카오로 간다. 그런데 웬우가 나타나 남매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웬우는 아내가 탈로에 살아 있다며 함께 그곳을 침략해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더니 남매가 반대하자 감옥에 가둬 버린다. 거기서 남매와 케이티는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만다린 연기를 했던 배우 트레버를 만난다. 원래 탈로에 살았던 그의 신비한 애완동물 모리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해 탈로에 간다.

이모 난(양쯔충)이 그들을 반기고 마을 사람 모두는 웬우의 침입에 대비하는데. ‘아이언맨’ 시리즈부터 시작해 ‘어벤져스’ 시리즈까지 열광했던 마블 마니아라면 반가운 만큼 실망도 클 작품이다. 웬우의 정신이 흐려진 점도 애매모호하고, 그래서 그가 제 자식들을 해치려 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다.

도대체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왜 저리 소통이 안 될까 답답할 정도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가깝기는 쉽지 않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더욱 그렇다. 웬우가 결혼 전의 야욕을 불태우던 시절의 캐릭터를 유지했더라면 그럴 법도 하지만 결혼 후 그는 달라졌다. 과거로 회귀한 건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미에 빌런이 웬우에서 거대 괴수로 바뀌는 전환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전까지 부모와 자식이 그렇게 원수처럼 싸웠던 이유를 납득할 만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관객을 손쉽게 설득하려는 강압적 자세는 웬만큼 인지 능력이 있는 관객에게는 불쾌할 따름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황당하다.

샹치 캐릭터는 리샤오룽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 무협을 주요 액션 소재로 이끌어가는 것은 봐 줄 만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황당하고도 또 많은 중국 무협 판타지 영화들이 양산되는 영화계에서 마블의 SF마저 그것들과 별반 다름없다는 데서 올 법한 피로감은 분명히 핸디캡이다. 데이빗 린치가 ‘사구’(1984)에서 중국 무협을 거부한 근거는 자존심이다.

‘닥터 스트레인저’에서 꽤 비중이 큰 웡의 카메오 등장과 쿠키 영상 등은 그나마 위안이 될 듯하다. 아콰피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양쯔충의 무게감은 시무 리우의 의외로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상해 주고도 남는다. 이 작품의 나름의 미덕이다.

중국은 무협 영화의 메카이고, 특유의 과장을 버무린 판타지 무협으로 일가를 이루어 왔다. 허무맹랑한 영화도 있었지만 의외로 재미와 의미가 큰 작품 역시 존재해 왔다. 그런데 평소 중국의 무협 판타지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과연 할리우드에서까지 그런 작품을 내어놓는 것을 마냥 반기기만 할까?

이전의 MCU에는 이른바 철학이 엄존했었다. 무기 판매로 갑부가 된 아이언맨은 전쟁을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비웃기까지 했다.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었던 캡틴 아메리카는 권력의 일방통행에 반기를 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전까지의 최고 빌런이었던 타노스조차 전 우주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관객에게 웅변하고자 하는 주제가 모호하다. 월트 디즈니는 물론 할리우드가 공통적으로 외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왜곡되었고, MCU의 웅대한 세계관은 사라져 버렸다. 그저 중국의 국지적 신화에 흡수되어 버렸을 따름이다. 사악한 괴수와 용이 다투는 마지막 시퀀스는 웬만한 중국 판타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샹치’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이다. 샹치는 웡의 팀으로 합류할 듯하고, 쑤는 이전 자신의 조직보다 훨씬 거대한 아버지의 조직을 떠맡아 새로운 활약을 보여 줄 것이다. 캡틴 마블, 헐크 등과 협업해 새 페이즈를 열 듯하다. 그런데 샹치의 능력은 캡틴 마블이나 우주의 빌런들의 그것에 비해 현저하게 약하다.

그 핸디캡을 극복해 가는 것을 보는 게 지난 페이즈만큼 재미있을까? 캡틴은 미국의 자긍심이라도 있었다. 게다가 은근히 중국을 우월하게, 상대적으로 한국을 열악하게 설정한 대사는 심히 불쾌하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명을 넘어 질주 중이지만 이 영화는 174만 명에 그쳤다.

마블은 월트 디즈니 소속이다. 마블은 어려웠던 시절 스파이더맨을 소니에 팔았다. 마블이 소니와 협상해 ‘어벤져스’에 스파이더맨을 합류시킨 것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엄연히 소니가 만든 작품이지 마블의 손을 거친 게 아니다. 타노스와 아이언맨이 떠난 마블의 앞날은 왠지 밝지 못해 보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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