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존 와츠 감독)은 MCU 페이즈 3의 마무리,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등이 던진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버라이어티 선물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미와 감동을 준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미스테리오를 죽인 스파이더맨에 대한 비난이 쇄도한다.

미스테리오는 죽으면서 스파이더맨이 피터 파커(톰 홀랜드)라고 알렸고, 대중은 지구를 지키려던 그를 스파이더맨이 죽였다며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그런 프로파간다의 선두는 TV 데일리 버글이다. 일상생활이 무너진 피터는 숙모 메이(마리사 토메이)와 함께 해피(존 파브로)의 집으로 피신한다.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숙모와 친구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잊는 마법을 주문한다. 하지만 혼돈이 오는 바람에 멀티버스의 문이 열리고 그린 고블린(윌렘 대포), 닥터 옥토퍼스(알프리드 몰리나), 모래 인간, 전기 인간, 도마뱀 인간 등이 등장한다.

와츠 감독의 ‘스파이더맨’ 홈 시리즈의 트릴로지 이전에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편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는 앞선 5편의 영화에 등장한 빌런들이 총출동한다. 물론 앞선 두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인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도 가세한다.

이는 MCU의 다중 우주 세계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앞선 두 시리즈를 모두 즐긴 마니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재미가 될 터이다. 설령 그렇지 못한 관객일지라도 많은 빌런들에 맞서는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응원하는 긴장감 역시 만만치 않다는 데서 몹시 흥미를 느낄 만하다.

빌런들은 모두 내면의 상처가 있다. 또한 스파이더맨에게 극도의 원한이 사무치고 있다. 스파이더맨들 역시 각자의 아픔이 있다.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친구의 아버지, 그리고 그 친구가 죽는 데 책임이 있다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웹의 스파이더맨은 연인 그웬이 사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와츠의 스파이더맨은 메이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멀티버스의 문을 열지 않았다면 그린 고블린이 이 세계로 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메이의 요절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가릴 것 없이 내면의 트라우마가 있다. 아니, 선인과 악인의 구분도 없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념은 크게 운명론과 목적론의 대립, 마법(신앙, 관념론)과 수학(과학, 유물론)의 대치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 박스를 이용해 경계가 무너진 멀티버스를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린 고블린 등 대부분의 빌런들은 죽을 것이기에 피터는 박스를 빼앗아 친구들에게 맡긴다.

피터는 빌런들 모두에게는 나름의 정신적 상처가 있기 때문에 악에 물들었기에 고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약물을 개발해 낸다. 목적론이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기에 바꿀 수 없다고 믿는다. 이것도 아이러니이다. 피터는 MIT에 입학하고자 하는 과학도이다.

게다가 그는 “마법보다 멋진 게 수학.”이라고 외친다. 당연히 유물론이나 결정론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정반대이다.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마법으로써 이미 이루어진 일을 바꿀 수 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생각을 가지는, 관념론자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 머리 복잡한 내용을 떠나 이 작품의 멀티버스 세계관은 정말 영악했다. 한두 명이 아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모든 빌런들을 한데 모으고, 세 명의 스파이더맨들이 협업하게 만든 설정은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피터의 연인 MJ(젠데이아 콜먼)를 웹의 스파이더맨이 구하는 시퀀스.

그는 자신의 부주의 혹은 무능력으로 그웬을 잃었다. 와츠의 스파이더맨은 무차별 공격하는 빌런들의 공세를 막으면서도 그들을 다치지 않게 하는 가운데 치료제를 투약하기 위해 애쓰느라 미처 MJ의 죽을 위기를 막지 못한다. 그때 그녀를 구하는 장본인은 바로 연인을 잃은 웹의 스파이더맨.

만약 MJ가 사망할 경우 와츠의 스파이더맨이 겪을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츠의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숙모의 죽음을 바로 직전에 겪었으니 그 통증은 더욱더 클 터. 토비 맥과이어는 46살, 앤드류 가필드는 38살, 톰 홀랜드는 25살이다. 맥과이어가 많이 늙었다.

복수심에 불탄 와츠의 스파이더맨이 괴력을 발휘해 그린 고블린을 마구 폭행해 무기력하게 만든 뒤 죽이려 할 때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이를 말린다. 그가 바로 고블린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에. 그러자 와츠의 스파이더맨은 그의 뜻을 이해한다. 그의 정신적 고통을 깨닫게 된 것.

결국 스파이더맨들은 모든 빌런들을 치유함으로써 운명론(혹은 결정론)을 거역하고 목적론을 달성하지만 희생도 뒤따른다. MJ와 네드까지 피터의 정체를 잊게 된 것. 피터는 정체를 밝히고자 MJ를 찾아간다. 그러나 쓰디쓴 커피만 마신 채 되돌아간다. 여기에서는 운명론이다. 정말 모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단, 토니 스타크의 첨단 슈트까지 갖춰 입고 능력이 증대되어 우주에까지 날아가 ‘어마무시한’ 타노스에 맞섰던 스파이더맨이 타노스에 비하면 ‘초딩’ 같은 그린 고블린 등에게 허덕대는 것과 아이언맨도 주무르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파이더맨에게 절절매는 건 왠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게 옥에 티. 상영 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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