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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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 전까지 헐렁한 바지가 이제는 먹잇감을 삼킨 보아뱀 껍질처럼 내 몸에 달라붙는다. 비싼 옷이라 아깝지만 별도리가 없다. 살을 빼던지, 아니면 동네마다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네모난 초록 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결국, 살을 빼서 예전의 옷을 입자는 판단이 선다.  새벽잠을 뿌리치고 걷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문제는 남은 절반이다. 어린 친구들이 대견스럽지만, 아령은 집에 두고 나오라는 충고를 결국 하지 못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관절의 최대가용범위(ROM)에 무리를 주어 회전반경이 인체에서 가장 큰 어깨관절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또한,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걷는다는 것은 신체의 말단에 중량을 거는 행위다.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을 고려해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아령과 걷기의 만남이니 유, 무산소 운동을 동시에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몇백 g짜리 도구로 골격근에 부하를 줄 수는 없다. 아령을 들고 걷는 것이 칼로리 소모를 조금이라도 늘리지 않느냐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그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상해로 인한 손해가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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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운동수행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지, 의욕에 넘쳐 무언가를 들고 뛸 일이 아니다. 이것은 휘트니스 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원권을 끊은 첫날부터 모든 운동기구를 섭렵하려는 젊은 친구들을 제대로 교육받은 피지컬 트레이너라면 따라다니면서 말릴 수 있어야 한다. 체중을 줄이거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은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과정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짊어진 멍에나 던져버릴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힘을 빼고 천천히, 오래오래, 길게 갈 일이다. 새벽에 강변을 걷더라도 목표한 지점을 꼭 돌아올 필요는 없다. 힘들면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도 된다. 산에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상을 오르지 못하면 중턱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내려오면 그뿐이다. 목표한 지점이나 정상을 극복해야 우리의 체중이 줄고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장시간 과속으로 달려 연료통을 비울 수 있는 자동차와 인간의 몸은 본질에서 다르다.

탄수화물과 지방의 혼용 대사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콧등에 땀이 맺힐 정도의 강도로 걷기 시작한 지 20분이 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40여 분 정도가 지방을 가장 활발히 태우는 타이밍이 된다. 몇 시간씩 운동시간이 늘어지면 우리 몸은 체중감량 노력을 비웃듯 피로물질인 젖산을 내보내 지방의 분해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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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소중히 여기는 지방의 분출이 끝났으니 오늘은 그만하라는 의미다. 급격히 줄어드는 체지방에 대응하여 다른 조직이나 기관들이 생리적으로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한 우리 몸의 기전이다. 점진적으로 천천히 우리 몸에 순응하며 내일을 위하여 목표를 남겨 두는 지혜로운 운동을 해야 한다.

목표에 매달리면 운동조차 고달픈 것이 될 뿐이다. 건강을 위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여정을 즐겨야 하는 여행과 흡사하다. 차가 막히거나 비행기가 연착된다 하더라도 조바심이나 짜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 여정을 즐기지 못한 자가 목적지에 도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운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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