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의 간판 스타 방탄소년단.
하이브의 간판 스타 방탄소년단.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수많은 대중의 시선이 하이브-이수만 연합 대 카카오-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 연합 간의 경영권 다툼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전쟁은 점입가경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다툼의 과정과 결과가 전 세계 K-팝의 흐름과 관련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이브는 지난달 16일 SM 주식 공개 매수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금감원은 공개 매수 기간 중 주식 대량 매집 등을 통해 공정한 가격 형성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신속하게 조사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어쨌든 SM 주가가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 매수 가격보다 높아짐에 따라 하이브의 공개 매수는 실패 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이브는 금감원의 행동 결과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편 SM 현 경영진 측은 이달 말로 예정된 주주 총회를 앞두고 소액 주주에게 "하이브 이사회는 당연히 새로운 사업 기회를 SM이 아닌 하이브에 줄 것."이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내며 설득에 나섰다. 특히 좋은 곡이나 기획 등이 있으면 자사 및 계열사 아티스트에게 먼저 줄 것이라는 내용을 부각하며 "하이브는 SM과 1~2위를 다투는 업계 최대 경쟁사."라고 못 박았다.

모든 어젠더나 이슈에는 긍정과 부정의 이항대립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먼저 희망. K-팝이 전 세계의 대중음악을 주도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하이브, SM, JYP, YG 등의 4대 공룡이 사실상 K-팝 시장을 이끌며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해 왔다. 물론 때에 따라 4개 회사의 매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는 하지만 4대 산맥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평균적으로 살짝 앞서는 하이브와 SM이 통합되는 모양새이다. 가장 큰 공룡이었던 초식의 아르젠티노사우르스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이빨과 공격성까지 장착하는 벌크업을 했다는 의미이다. 일단 우리나라는 미국의 워너뮤직이나 소니뮤직 같은 사이즈의 메이저 스튜디오를 보유하게 되었다.

두 회사의 결합은 단순히 국내 아티스트의 K-팝의 발전뿐만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현지 아티스트를 직접 배출하고 활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가능성을 확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 스타와 계약하거나, 미국 신인을 미국에 데뷔시켜 워너나 소니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아티스트들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나 제3세계에서까지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 두 회사는 메타버스 사업까지 순탄하게 잘 풀어갈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노하우와 그들이 거느린 자회사 등으로 미루어 짐작하기 쉬운 가망성이다.

그렇게 마냥 희망적일까? 그렇다면 왜 SM의 임직원들은 공동대표를 지지하는가? 관계자들의 우려 중 가장 전면에 대두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30여 년간 이어온 SM 고유의 색깔이 하이브와의 결합으로 희석되거나 퇴색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파심으로 보인다. 현재 4대 산맥의 색깔은 살짝 다르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 차이가 '오십 보 백 보'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K-팝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제 이수만도, 방시혁도 YG의 양현석만큼 프로듀싱이나 마케팅에 깊게 개입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시간도 없고, 시스템도 바뀌었다. 체계가 예전과 달리 세분화되었고, 방대해졌다.

SM의 맏형 엑소.
SM의 맏형 엑소.

 

둘째는 중소 기획사의 존립 문제인데 이는 상당히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가 SM을 인수하기 전에도 사실상 K-팝은 4대 산맥이 거의 독점했다시히 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로트 스타와 일부 발라드, 힙합, 팝 계열의 독립 뮤지션을 제외하면 K-팝은 군소 업체들이 끼어들 자리가 거의 없다시피했던 게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더 큰 공룡이 등장했으니 도마뱀이나 이구아나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진 것이다. 현재 4대 산맥의 홍보 및 활동 방식은 콘서트, 팬 미팅, 자체 채널 운용, 바이럴 마케팅, 방송 출연, 언론 노출 등이 있다. 그런데 자체 시스템이 워낙 견고하고 방대하다 보니 예전처럼 지상파 방송사의 TV나 라디오에 고개를 조아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방송사에서 4대 산맥의 가수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하지만 중소 기획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그들은 스타를 영입할 자금이 없다. 운 좋게 그런 돈을 투자 받더라도 아티스트가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신인을 키워야 하는데 이미 가능성 높은 신인들은 스스로 4대 산맥의 오디션을 치르고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될성부른 떡잎을 영입하기도 어렵지만 운 좋게 그런다 한들 방송에 출연시킬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방송사도 '안전빵'인 4대 산맥의 신인을 출연시키는 게 시청률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T 렉스의 공격력을 갖춘 아르젠티노사우르스의 등장에 이제 도마뱀들은 숨이 막힐 지경일 것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음악 프로그램과 CJ 산하 Mnet 역시 대놓고 하이브-SM에게 고개 숙여야 할 것이다. JYP와 YG 역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듀서로서, 뮤지션으로서의 일 대 일 대결이라면 박진영은 분명히 경쟁력이 있지만 하이브와 SM의 결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많은 프로듀서, 뮤지션, 가수 지망생들이 그쪽으로 몰릴 것은 명약관화하다.

일각에서는 한때 일본의 인기 보이 그룹들을 보유하고 J-팝을 쥐락펴락했지만 결국 다양성의 상실로 몰락한 주식회사 쟈니스 사무소의 재현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고, 당시 쟈니스가 현재의 K-팝처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차이는 클 것이다.

단, 다양성은 더욱 훼손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성시경과 김종국은 계속 '먹방'이나 예능만 할 것이다. 록, 포크, 발라드 등은 오리무중을 헤맬 것이다. 재즈와 블루스는 지하로 숨을 것이다. 싱어 송 라이터는 하이브-SM을 먼저 생각한 뒤 차선책을 강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SM 직원들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우려해서, 다양성 훼손과 그에 따른 군소 기획사의 존립 문제를 긍휼히 여겨 하이브의 인수를 반대한 것일까? 천만에! 그들은 이수만의 오랜 천상천하 유아독존 체제에 넌더리가 났다고 보는 게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이수만의 처조카인 이성수 공동대표가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게 그 추측을 가능케 한다.

SM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어도어 대표까지 오른 민희진 같은 현재의 신입 사원이 SM 안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임직원들이 허물없이 토론함으로써 다양한 의견이 다양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로 쇄신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쉽게 말해 '꼰대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양성일 보장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무엇이 옳은지 아직은 정답이 없다. 다만 하이브+이수만 세력이 주도권을 쥐더라도 예전처럼 이수만이 SM에 입김을 불어넣을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가 K-팝의 개척자(선구자)인 것은 맞지만 시간과 유행에 민감한 K-팝 시장에서 영원히 '젊은 프로듀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진영만 해도 점점 후배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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