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윈'(타넬리 무스토넨 감독, 2023)은 호러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나름대로 즐길 만한 긴장과 공포를 체험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제작사의 '미드소마'(아리 에스터 감독, 2019)에 버금간다는 주장은 나름의 고려가 필요할 듯하다. 사진작가 레이첼(테레사 팔머)과 소설가 앤서니(스티븐 크리) 부부는 자동차 사고로 쌍둥이 아들 중 네이선을 잃는다.

그들은 고통을 잊고자 집을 처분하고 남은 아들 엘리엇과 함께 앤서니의 고향 핀란드의 시골 마을로 이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하는 파티를 열어 준다. 거기서 레이첼은 헬렌이라는 할머니와 친해진다. 헬렌은 이 마을에 교회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마을 사람들은 원을 숭배하는 이교도라고 알린다. 그 때문에 자신의 남편이 희생됐다고.

이사 후 엘리엇은 이상한 행동을 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네이트라고 주장한다. 레이첼은 매일 밤 악몽을 꾼다. 앤서니는 레이첼을 달래 주지만 레이첼은 앤서니한테 엘리엇에게 관심을 좀 가져 달라고 애원한다. 이를 아는 듯 엘리엇은 자신을 아껴 주는 레이첼에게 '아버지가 네이트만 좋아한다.'라고 원망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의식으로 레이첼 가족을 조여 오고, 레이첼은 이 모든 어려움을 헬렌에게 토로한다. 헬렌은 이 마을은 인큐버스의 땅이고, 인큐버스는 엘리엇을 차지하려 한다고 알려 준다. 그리고 인큐버스에 대항해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귀띔해 주는데.

촬영 기법과 장면 전환의 편집 스타일, 그리고 음향 효과는 마치 호러 영화의 정석을 보는 듯 긴장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드소마'의 스웨덴과 위도나 문화가 비슷한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림은 다르지만 충분히 스산한 느낌을 준다. 특히 초반의 순수한 설경이 점차 모노톤으로 변하며 공포를 주는 테크닉은 훌륭하다.

이 작품의 표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큐버스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전해 오는 인큐버스는 몽마 혹은 음란마귀이다. 즉 주로 꿈속에 나타나는 색마인 것. 이런 소재는 '미드소마'를 연상케 하지만 내용은 매우 다르다. 인큐버스를 숭배하는 이교도를 전면에 배치해 한 가족의 불행을 처절하게 펼쳐 나간다.

악마가 인간의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오려 한다는 소재는 수많은 호러 영화나 '콘스탄틴'(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2005) 같은 판타지 SF를 통해 다루어졌다. '트윈' 역시 그런 내용으로 인큐버스라는 악마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 충분히 살려 준다.

게다가 쌍둥이라는 소재를 통해 육체는 둘로 나누어졌지만 영혼이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는 쌍둥이 중 한 명이 사라졌을 때의 남은 자(트윈)의 통증과 혼란을 잘 보여 준다. 엘리엇은 자신의 방에 네이트의 침대도 놓아 달라고 부탁한 뒤 제 침대가 아닌, 네이트의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네이트의 유물을 간직한 채 자신이 네이트라고 주장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번의 반전으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첫 번째 반전은 헬렌의 코멘트에 의해 짐작이 가능하다. 제목도 그걸 예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 반전은 예상 불가능하다. 그것은 첫째 반전이 보여 주는 관념론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알아채기 힘들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항대립 중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게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쌍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가장 절박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작동시키는 방어기제(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방어기제는 자아와 외부 조건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잘 활용된다.

갈등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자신을 속이는, 관점만을 바꾸는 부정, 억압, 합리화, 투사, 승화 등의 방법을 통해 갈등과 분열을 봉합한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사회 적응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에고의 세계로 풍덩 빠지는 것이므로.

마을 사람들이 원을 숭배한다고 설정한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원은 Circle이자 곧 Loop, 즉 순환이다.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온다는 뜻. 가장 오래된 신은 최소한 1만 5000년은 된 트리비아, 곧 삼위일체의 여신이다.

인큐버스 신봉자들은 삼위일체를 거부하고 원을 숭배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른다. 어떤 신이 더 위대하거나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위일체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듯 이미 '수의 신'인 피타고라스조차도 2600년 전부터 윤회를 주장했으니. 유물론적 윤회는 부활이지만 관념론적으로는 단편적 삶 자체가 순환, 다람쥐 쳇바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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