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무비&철학] 만약 유아인(36, 본명 엄흥식)과 돈 스파이크(46, 본명 김민수)가 마약 투약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유아인은 영화, 드라마, OTT 오리지널 등을 통해 맹활약을 펼치며 계속 수입을 쌓아 가는 가운데 사랑이든, 취미 생활이든 사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소셜테이너'로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존경도 받았을 것이다.

돈 스파이크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휩쓸며 먹성을 자랑하거나 모처럼 진지하게 스튜디오에 앉아 작곡이나 프로듀싱에 몰두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발표한 중간급 히트를 뛰어넘는 빅 히트 넘버를 발표했을 수도 있다. 요식 사업이 잘돼 백종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수도 있다. 최소한 1년 전보다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마약 투약이 불법이고, 그게 경찰에 적발될 경우 어떻게 될지 몰랐을 리 만무하다. 실형 여부를 떠나 최소한 여론 재판에 의해 명예가 실추되고, 돈벌이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단, 지금까지 벌어 놓은 돈이 많고, 요식업 같은 경우 전과와 관계없을 가능성도 열려 있기는 했다.

어쨌든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위험한 행동을 했을까? 유아인은 까다롭고 까칠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불합리, 부조리한 현상이나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바른말을 쏟아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나이 또래의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 논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연기 솜씨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그야말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다양한 예술 활동과 봉사 활동으로 반듯한 아티스트의 면모도 뽐냈다. 지적인 이미지가 강렬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마약중독자였다. 그가 무려 4가지의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긍정적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금까지의 팩트만 놓고 본다면 겉으로 드러난 그의 이미지는 포장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추측건대 그는 알려진 만큼 그리 강한 성격이 못 된다. 그러나 연예인이기에 그런 척해야 했고, 한 번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자 그걸 지키기 위해 더욱 마음을 다져야 했다. 하지만 천성이 그리 강하지 못하고 나약하니 마약에 손을 대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마약에 취한 순간만큼은 평온하고 강인해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자꾸 연장된 것이다.

그런 심리 상태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평범한 학생이나 회사원일지라도 자신이 움직이는 영역 안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어떤 이미지를 구축할 때가 있다. 혹은 어떤 특별한 계기에 의해 그런 이미지로 굳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언행을 그런 쪽에 맞추기 십상이다. 그게 생존 방법이기에.

돈 스파이크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더욱 짙다. 그는 그룹 포지션의 객원 피아니스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그는 삭발 머리에 커다란 덩치로 인해 굉장히 강해 보이지만 사실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한다. 그는 치열한 경쟁이 심한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고, 강하게 보여야 했다. 그의 변모한 외모가 가장 큰 증거이다.

그가 작업한 뮤지션들을 보면 그의 음악성이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요계, 연예계가 어떤 곳인가? 음악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히트곡과 인기도가 중요하다. 그는 변별성을 갖추어야 할 절실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강하게 다지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열쇠는 그에게 있어서는 마약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 모든 추측, 혹은 그들이 진짜 그런 심리였다면 그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논리대로라면 베토벤, 모차르트, 비틀스, 조용필, 방탄소년단 등은 모두 마약중독자였어야 마땅하다. 송강호, 설경구도 마약에 절어 있어야 한다.

그들의 심리에 핑계가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배경은 비뚤어진 우월 의식 혹은 어긋난 예술 개념에 대해 의심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가요계에 대마초가 유행한 적이 있다. 특히 당시 로커들이 대마초에 매우 가까웠다. 그 이유는 음감이 좋아지고, 연주 실력이 향상되며, 창작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결국 핑계라는 건 그렇게 해서 탄생한 보컬, 연주, 창작물 등이 영원할 수도, 자신의 완전한 실력일 수도 없다는 데서 드러난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과 학습,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선천적인 재능 등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의 수준을 약물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인류는 고대에 동물들이 낙과가 발효되면서 만들어 낸 알코올 액체를 마시고 몽롱해지는 것을 보고 알코올을 알게 되었다. 이로 미루어 동물들의 본성에 환각을 선호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각은 종교에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관념론보다 유물론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제 철학의 딸 과학이 어머니를 장롱 속으로 밀어 넣은 시대이다.

고흐가 알코올중독에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맞지만 마약중독자였다는 증거는 없다. 보들레르는 술과 마약으로 인해 겪는 환각을 '인공 낙원'이라고 불렀다. 혹시라도 '나는 아티스트이니까 마약을 투약해도 괜찮아.'라든가 '그래야만 내 예술혼이 잘 표현된다.'라는 우월감이 있었고, 아직 버리지 못했다면 재기는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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