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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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은 MBN 개국 이래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기록을 써 갔지만 최악의 논란이라는 수식어까지 감내해야 했다. 종영되었지만 시청자들의 입맛은 개운하지 않고, 황영웅의 팬들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시위까지 벌이며 논란을 잠재우기보다는 오히려 부채질을 해 대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난 8일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는 7일 방송된 ‘불타는 트롯맨’ 최종 회 시청률이 1부 14.8%, 2부 16.2%, 3부 15.6%로 자체 최고 시청률 16.6%(10회)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전주 11회의 16.4%보다도 낮았다. 마지막 회에 우승자가 가려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격상 최종 회에 시청자의 최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인데 이 프로그램은 그런 어드밴티지조차도 못 누렸다.

1차원적으로 보았을 때는 MBN의 효자 중의 효자였다. 초반 시청률 9%대만 하더라도 '개국 이래 최고의 시청률'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분위기였는데 무려 16%대까지 올랐다. 20%대의 TV조선 '미스터 트롯 2'와 비교하면 쑥스럽지만 요즘 지상파 예능 최고 시청률이 10% 초반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MBN 예능의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이었다.

그럼에도 MBN은 대놓고 축배를 부딪치기 쉽지 않은 분위기이다. 내부적으로는 웃을지 몰라도 대외적으로는 감춰야 할 수밖에 없는 공기가 부유하고 있다. 외주 제작사인 크레아스튜디오와 서혜진 대표는 어떨지 몰라도. 이는 MBN 윗선과 서 대표의 판단 착오가 빚은, 미리 정답이 뻔히 보였던 결과이지 절대 이변이 아니다.

보통 어떤 사람의 수준을 알려면 그의 가족과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황영웅 팬들의 시위는 황영웅 및 '불타는 트롯' 제작진의 수준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MBN 사옥 앞에서 황영웅의 팬들이 모여 그의 '불타는 트롯맨' 결승전 기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들어 올린 현수막에는 '황영웅 인권 사수!', '기자들, 마녀사냥 중단하라.', '가짜 뉴스에 엄마들 뿔났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표준국어대사전)이다. 여론이든, 기자이든 황영웅의 사생활에 간섭한 바 없다. 그의 생존을 위협하려 한 적 없다. 다만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하는 것만 중단하라고 요구했을 따름이다.

마녀사냥이란 특정한 사람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말한다. 그의 상해 전과나 학창 시절의 폭력 폭로가 그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주작의 가짜 뉴스라는 말인가? 그의 '결백'을 주장하는 팬들의 억지가 가짜 뉴스가 아닐까? 왜 태반의 시청자는, 거의 모든 언론은 황영웅의 낙마를 요구했는가.

그 배경은 첫째, 혹시라도 황영웅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우연찮게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서 느낄, 반복되는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다수의 시청자들이 여러 범죄와 그런 의혹에 대해 불쾌하게 느끼면서 출연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는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황영웅의 우승이 유력시되었고, 9일 팬들의 시위에서 보듯 어느 정도의 팬 무리가 형성된 상태에서 그가 계속 방송 매체에 얼굴을 노출하고 우승까지 할 경우 그 무리의 수나 인기도가 더 높아질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지난달 논란이 일기 시작했을 때 황영웅과 제작진이 재빠르게,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지도, 다수의 시청자가 납득할 만한 반성의 액션을 취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황영웅은 아직 최종 결승전을 치르기도 전에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6억 원이 넘는 우승 상금을 불우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오만방자한 발언을 서슴지 않아 분노만 더 키웠다.

서 대표와 '윗선'이 뚝심을 과시하지 않고 초반에 시청자를 어려워할 줄 아는 겸손한 태도만 가졌다면 이토록 논란을 키우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매체가 '불타는 트롯맨'과 황영웅을 부정적으로 평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찰나의 결정이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최소한 1주일도 넘게 걸렸다. 그들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판단 착오의 착시 현상에 스스로 좌초했다.

에드문트 후설은 '판단중지'라는 유명한 논리를 설파한 바 있다. 그건 '외부 세계에 대한 믿음들, 특히 외부 세계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자립적으로 실재한다는 믿음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는 '특정한 대상 영역에서만 타당한 방법을 모든 대상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는 행위'를 우려하는 방법론을 설파했다.

서 대표는 방송사 재직 시절 시청률이라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지만 동시에 각종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그녀는 '송포유',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를 연출할 때 학교 폭력 가해자를 미화해 2차 가해를 가했다는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설마 이번에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자만하면서 판단 착오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후설을 참고한다면 벽 등의 난관에 부닥쳤을 때에는 이전까지의 판단을 중지하고, 자신의 인식 능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봄직하다. 일장일단이 있기는 하지만 겸허와 교만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장려하는 것은 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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