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무비&철학] 유명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예능 프로그램으로 진출하는 것은 이제 수순이 되었다. 이천수와 이동국이 예능에서 맹활약을 하는 가운데 안정환은 국내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 출신 예능인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모범 케이스를 보여 주고 있다. 그 외에도 양준혁, 홍성은부터 이대호까지 프로 야구 선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이 예능을 주름잡고 있다.

김동현, 아키야마 요시히로(추성훈) 등 종합 격투기 선수들도 있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로 골퍼 출신 박세리도 버티고 있다. 김연아는 현역 시절부터 이미 최고의 CF 스타였고, 이상화도 준 연예인이다. 그 외에도 프로 스포츠 스타 출신 방송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왜 그런 것일까?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때 요리사들이 대거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이제 살기 위해 먹는 시대가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냐,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어떤 요리를 즐기며 인생을 향유할까?'의 시대가 된 게 배경이다. 식사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요리사는 '주방장'에서 '셰프'로 호칭이 바뀌었고, 그 위치 또한 격상되었다. 요리가 기술을 넘어 예술로 승화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사회적 흐름과 발 맞춰 방송사는 요리나 식당과 연관된 오락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견인하게 되었고, 셰프들이 그 중심에서 길라잡이 역할을 넘어 콘텐츠의 중심에 서는 방송인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런 식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아직도 적지 않은 셰프들의 예능 활약은 지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스포츠 스타들이 꽤 많은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 배경은 첫째, 스포츠 선수였을 때 이미 그들은 스타였개 때문이다. 현역 시절 이미 폭발적인 인기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게 배경이다.

당시 그들은 방송, 신문 등 언론과의 접촉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가 잦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둘째, 그렇다 보니 시청자에게 어필하기 매우 쉽다. '어느 곳에서 어떤 요리를 하는 요리 장인'이라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이 그냥 '안정환'이라고 하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당연히 기본 시청률을 보장했다.

셋째 예능의 패러다임이 먼저 바뀌었거나 그들에 의해 바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이지만 공간의 한정성이라는 핸디캡이 있다. 그런데 스크린 골프의 유행으로 골프가 그런 한계를 극복하면서 동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면서 골프 예능이 우후죽슨처럼 생기고 있다.

그렇다고 박세리와 김미현의 대결을 예능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전직 축구, 야구, 농구 선수 등과 연예인을 골프장으로 내몰아 골프 예능을 만들면 일단 재미가 보장된다. 그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1, 2등을 다퉜다고 하더라도 골프는 아예 다른 운동이기에 단기간에 실력이 늘 수가 없다. 허재가 OB 구역으로 공을 보내고, 안정환이 헛스윙을 하는데 안 재미있을 리 없다.

물론 골프 예능 훨씬 전부터 스포츠 스타 출신 예능인의 활발한 진출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안 싸우면 다행이야' 같은, 음식과 생존을 앞세운 리얼리티 예능과 더불어 골프 예능, 그리고 캐롬(국제식 대대 3쿠션 당구) 예능이 유행하면서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운동 선수 출신들이 개그맨보다 더 웃기기는 힘들다. 강호동 정도의 센스를 갖추지 않는 한 그들은 말솜씨나 몸 개그로써는 절대 코미디언을 당해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개그맨에게 없는 장점이 있다. 바로 운동 선수 특유의 순진함과 우직함이다. 세상만사에 '때' 묻지 않은 그런 순진성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기 쉬운 것이다.

유명 선수 출신 중 프로 팀이나 학교 등에 지도자로 가지 않는 한 재취업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은퇴자들에게 예능은 정말 좋은 재취업의 기회이다. 현역 시절처럼 힘들게 몸을 혹사하지 않아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열심히 하고, 운까지 따른다면 현역 시절에 못지않은 수입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은퇴 후의 인생 제2막으로서는 매우 훌륭하다.

개그맨의 경우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에 관여하며, 애드 리브에도 크게 신경 써야 하지만 은퇴 선수의 경우 그럴 부담감이 없다. 그냥 대본대로만 하면 된다. 게다가 연출자나 작가가 바라는 애드 리브는 촌철살인이 아니라 그가 가진 캐릭터일 뿐이니 어려울 게 없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어설프게 예능에 도전했다가 실패할 경우 진지하고 강해 보였던 현역 시절의 이미지만 깎일 뿐 실리가 거의 없이 쓸쓸히 방송가에서 사라져야 한다. 제작진 역시 '사람 볼 줄 모른다.'라는 비난을 열어 두고 제작해야 한다. 시청자야 안 보면 그뿐이다.

어쨌든 안정환은 강호동 이후에 최고의 훌륭한 모델이 될 듯하다. 그는 강호동처럼 코미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미리 설정한 캐릭터나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출연하는 예능마다 성공한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첫째, 현역 시절의 '테리우스'라는 별명처럼 잘생긴 외모와 이미지, 그리고 훌륭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호감을 산 게 선입견에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김성주, 정형돈, 김용만이라는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던 게 결정적이었다. 사실 그 세 사람을 떼어 놓고 보면 각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1등은 아니다. 그런데 네 사람이 만나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그 어떤 예능보다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합을 이루었다.

'뭉쳐야 뜬다'로 성공해 '동네 당구'로 그 조합을 굳혀 최근 '뭉뜬 리턴즈'까지 내달리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네 명의 조화 덕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스포츠 스타 출신 최고의 예능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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