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정다운의 영화 들여다보기] 동화는 흔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분류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애니메이션 속 판타지 세계에 열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동화 속 세계는 흥미롭다. 손에서 얼음을 내뿜는 여왕의 이야기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높은 탑 속에 갇힌 공주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논리적이어서 더 즐겁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을 잘 아는 어른이 된 후로는 이 판타지적인 동화 이야기가 현실의 도피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만을 정직하게 보여 주는 현실과 달리 애니메이션 속에는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찌 되었든 해피엔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동화는 어른들의 마음도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모든 동화가 어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아이들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어른들이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열광하는 애니메이션을 고른 뒤 영화관에 앉아 무료하게 러닝타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은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어른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업(UP)'이 바로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흔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왜 그런 수식어가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업'은 월트 디즈니와 픽사 스튜디오가 함께 만든 첫 번째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로 데뷔한 피트 닥터 감독이 연출했다.

닥터 감독은 '업'의 배경으로 쓸 장소를 찾기 위해 실제로 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의 테푸이 산에 직접 다녀오고 나서 닥터 감독은 그가 모험 중 보았던 풍경과 식물들을 영화 속에 삽입했다. 덕분에 영화 곳곳에서 아름다운 대자연과 희귀한 식물들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 할아버지 칼의 모험을 위주로 전개된다. 어릴 적 꿈의 장소였던 파라다이스 폭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칼과 앨리가 결혼해 함께 살아가다가 마침내 앨리가 죽음으로써 이별하게 되는 과정을 단 4분만에 대사 한 마디 없이 담아 냈다.

 

그 과정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그러한 것처럼 마냥 행복한 장면만을 담은 것이 아니어서 더 공감이 간다. 칼과 앨리는 어릴 적 꼭 파라다이스 폭포로 모험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둘은 살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모험을 뒤로 미루었고 결국 꿈을 이루기 전에 앨리가 죽고 만다.

칼은 그녀의 꿈을 이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늦게나마 모험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앨리가 남긴 메모를 보고 칼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당신과 함께한 인생 자체가 모험이었으니 고맙다는 그녀의 말은 관객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꿈을 꾼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되겠다거나 나쁜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이 되겠다거나 하는 꿈들을 지녔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가고 세상을 배워 가면서 이 꿈들이 녹록지 않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터무니없던 꿈을 잊고 여느 사람들처럼 현실에 순응해 바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내게 된다. 인생은 평탄한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좋기도, 때로는 나쁘기도 한데 이 모든 우여곡절을 견뎌 낸 인생 그 자체가 모험이고 꿈의 실현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뿐만 아니라 영상미 역시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풍선을 이용해 비행한다는 설정 때문에 수많은 풍선이 등장하는데 풍성한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한다. 또한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 등 많은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마이클 지아치노의 음악 덕분에 영화 전체의 따스하면서도 모험적인 분위기가 한층 더 살아났다.

'업'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얻는 게 더 많은 영화이다. 아이들이 봤을 때는 아마 풍선으로 집을 띄워 모험하는 신기한 영화일 테지만 어른들에게 이 영화는 단순 모험 애니메이션 그 이상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삶을 담고 있고 그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려 주고 있다. 당신이 비록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아닐지라도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삶이 그보다 못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의 삶 역시 모험이고 그 모험을 함께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영화이다. 이런 애니메이션이라면 어른을 위한 맞춤 동화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것이다.

추천키워드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